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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클래식은 물론이고 모든 음악장르에 문외한이다. 귀도 그리 섬세하지 못한지라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줄줄 흘린다든지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껴본적은 커녕 마냥 무덤덤이다. 가끔 틀어놓는 CD들은 감정몰입을 위해서라기 보단 ㅡ 빈 시공간을 채우기 위한 배경음악이다. 하여 이 책에서 늘어놓는 수많은 '명곡'들은 태반이 들어본 적도 없고 - 혹은, 우연히 들었다해도 제목을 몰라 매치시킬 수 없으니 못들은것이나 다름없고 - 원체 음악에 대한 흥미가 없으니 작품에 대한 저자의 비판 - 일례로 슈베르트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클래식이 대책없는 감정과잉이라는 것 등 -에 공감하지는 못했다. 다만 사회적으로 형성된 통념을 깨는것이 재미있었을 뿐.
기존의 권위를 '까는'책들이 늘 그러하듯 이 책도 상당히 도발적이고 - 경쾌하다. 한 때 클래식에 빠졌던 독자에게는 더하겠지만 나같은 '주변인'에게도 '만들어진 권위'를 무너뜨리는 반란은 흥미롭다. 한때 탐닉했던 사람(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신랄한 독설로 '클래식 우상화'에 감춰진 조잡함을 까발리고 그 권위에 기대 먹고사는 관련업종 종사자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악보의 재현' - 즉, 기계적 테크닉 - 만을 중시하는 연주풍토나, 듣는 사람을 수동적 구경꾼으로 밀어내는 감상풍토, 자본주의 옷을 입은 '천재마케팅' 에 대한 비판도 시원하다.
** 생각해보면 기존의 권위를 먹고사는 사람들이 어디 클래식 뿐이겠는가. 과거의 권위에 기대기로는 종교나 한의학계를 따라올 분야가 없다. 심오한(듯한, 그러나 알고보면 의미없는 헛소리에 불과한)용어를 써가며 초보자를 주눅들게 하는 건 그것밖에는 내세울 게 없는 (정신이)빈곤한 자들의 허장성세다.
하지만 '반란'이라 말하기에는 아직 겉멋이 덜 빠졌다. (MB시대의 물결을 타려는지) 안써도 될 영어형용사의 남발과 화려한 수사, 과장된 비난, 책 전체에서 풍기는 '은근한 교만함'은 딱 중앙일보 느낌이다. (저자가 중앙일보에서 일했고 현재도 그 산하 법인에 있는 것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겐 지극히 '부르주아'스러운 문체다) 일반인을 위한 책이기에 쉽게 쓴다고는 한 것 같지만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엔 책을 가득 채운 '음악적 용어/표현'들이 부담(이라기 보단 짜증)스럽다. 실컷 클래식 욕을 하다가 '대안음악'파트로 넘어가서는 침튀기며 극찬을 퍼붓는 것도 황당하다. (서천에 꾸린 임동창의 음악캠프를 소개하는 부분과 임동창이란 개인에 대한 소개 부분은 심지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풍긴다) 물론 여지껏 다른 음악들을 억눌러 온'클래식의 위세'에 대한 반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ㅡ 오랜 시간을 클래식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던 것에 대한 분풀이처럼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책이 비판하는 건 '클래식'이라는 좁은 분야가 아니라, 클래식이 표준음악이라는 (만들어진)통념의 근간인 '유럽 중심주의'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끊임없이 '타자'를 생산하고 배제시키며 자기정체성을 찾아온 유럽 이성 - 철학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담겨있다. 아쉬운 것은 과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내는 후대인들의 '신성화 작업'에 대한 비판은 많으나 작품 자체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17세기부터 모든 세대의 작곡가들은 음악적, 극적 영감을 찾아 동양을 탐구했고 음악적 효과나 오페라/발레의 줄거리, 노래의 가사/분위기 등에 동양적 요소 혹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틀이 깊숙이 개입되었다. p.115~124에서는 기독교-클래식-이성이라는 (클래식)트라이앵글 아래 몇몇 영화를 예로 들어 '이성중심주의가 불러온 광기와 폭력'을 이야기하는데 곧바로 철학적 문제제기로 빠져버린다. 이런 부분들에 '작품속의 오리엔탈리즘'이덧붙여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서인지 철학적 문제로 접근하기도 하고 야만 대 문명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문제의식도 있고 다방면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것저것 다 끌어 모아 '풍성하다'기 보다는 '산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책 마지막에 불쑥 등장하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어쩐지 '삑사리'같다.) 작곡가들에 대한 에피소드나 개인적 경험이 많아 재미있게 읽히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뒷표지에 적힌 추천서들 중에 '짜릿한 지적/정서적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말이 공허하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나는 귀 뿐만 아니라 뇌도 무감각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