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 - 공정 무역 Fair Trade 아주 특별한 상식 NN 5
데이비드 랜섬 지음, 장윤정 옮김 / 이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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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이라고 하면 왠지 '자선사업'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착취당하는 제3세계 빈민들을 위해 자발적 성금내는양. 그러고보면 나도 아직 기득권층의 논리에 물컹히 젖어있는듯 싶다. 당연한 의무에 생색내는 걸 넘어서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고 질 좋은" 고기를 수입하시겠다는 바로 그 논리.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든 세금만 잘 내면 된다는 그 절묘한 논리.

여기서 말하는 공정무역은 단지 소수의 생산자에게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생산 원가 보장이 기본이지만 거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위해 자행되는 범죄들 ㅡ 살인적인 농약살포, 노예제를 방불케 하는 근로조건, 지력을 거덜내는 경작방법 등 - 을 차단하고 '제대로 생산된' 제품을 '정상적 방법'으로 파는것이다. 하여 '유기농'과 긴밀히 연결된다. 저자는 유기농과 결합된 공정무역만이 현재의 (허울뿐인)'자유무역'이 가져올 대 재앙을 막아줄 유일한 대안이라 주장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저자는 그런 비관론은 대안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의 산물이라며 공정무역을 시도하고 있는 소수들의 힘겨운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유기농 바나나'는 '바나나 전쟁'속에서 찾아낸 희망적인 성공사례다.

공정무역의 대명사 커피가 표지를 장식한다. 커피가 워낙 착취율이 심해서 '주요 상품'이 되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채취-가공이 비교적 단순해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공정무역의 예로 들고있는것이 커피, 바나나, 코코아, 청바지인데 코코아는 워낙 가공방법이 다양하고 함께 사용되는 다른 재료가 많아 소규모로 시작하기 어렵단다. 청바지도 그렇고.) 커피생산 과정은 3년이라는 긴 시간과 (처음 재배를 시작하면 3년동안은 수확 없이 기다려야 한다) 자연재해의 위험, 힘든 노동이 필요하지만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판매가격 10% 이하다. 복잡한 유통과정상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ㅡ 커피 가격이 생산자들과 전혀 상관없이 거대 기업/투기꾼들의 입김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 가격이 폭락해도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죽어라 일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그나마도 매년 불확실한 커피가격앞에 덜덜 떨어야 하고. 커피가 지력을 엄청나게 소모시킨다는걸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커피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자연환경파괴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바나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살포되는 농약 - 냄새도 심하고 독성도 강해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과일을 절대 먹지 않는다. - 속에서 겨우 먹고살만한 돈을 받으며 일한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덕에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1차생산에 전념하라 훈계하고는 (이렇게 확보된 공급덕에 가격은 떨어지도록 판을 짜 놓은뒤에) 자기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전념하며 느긋하게 착취결과를 즐긴다. 거대기업들의 '바나나 전쟁'탓에 과테말라 노동자들은 끔찍한 착취와 노조탄압을 겪었다.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병균들이 퍼지기 힘든 덥지만 건조한 기후와 공정무역을 돕는 네덜란드 기관덕에 유기농 바나나생산에 성공했고 유럽쪽에서 '유기농 바나나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물론 이곳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 (한번 유기농 바나나에 맛을 들이면 일반 바나나는 먹을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다고 한다.)

코코아는 모든 농산물중에서 가장 농약을 많이 치는 작물 중 하나라고 한다. 코코아는 워낙 가공방법이 다양해서 최고급 코코아를 생산해 내도 그것을 적절히 가공할 수 있는 공장이 거의 없어서ㅡ 엄청난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는 몇몇 (공정무역)기업들만 유기농초콜릿을 생산할 수 있다. 보통 초콜릿들은 코코아 함유량이 지극히 낮고ㅡ 우리가 초콜릿 맛이라고 알고 있는것은 거의 설탕/물엿/버터 등의 조합이다. 다행히 더 좋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크 초콜릿', '유기농 초콜릿'시장이 커지고는 있지만ㅡ 대기업 상표와 광고에 의해 지배되는 초콜릿 산업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은 '판매'역시 쉽지 않다. 초콜릿은 생산-가공-포장-판매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대기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품이다.

청바지 제작과정은 또 어떤가. 면 생산에는 다른 어떤 작물보다 독한 살충제가 쓰이고(때문에 해마다 수백만명의 중독환자가 생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면의 절반이상이 유전자 조작이며(왜 미국이 빠지나 했다 -_-) 염색에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 쓰인다. 멕시코의 여러 '민감한 생태계'는 청바지 워싱을 위한 '경석(輕石)채취로 파괴되었고, 청바지의 정교한 바느질은 제3세계 여직원들의 노동착취 결과다. 면의 대용물로 '삼 청바지'가 있으나 마약 전쟁 옹호자들에 의해 종종 삼을 이용하는것은 지원된 비난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절묘한 분석이 나온다. "독성 약품과 착취된 노동자의 땀이 없는 청바지가 300달러라면, 도대체 50달러짜리 청바지의 나머지 250달러는 누가 내고 있는 것인가?" 물론 대규모 생산이 주는 비용 절감도 상당하겠지만ㅡ 결국 노동자 착취 공장의 젊은 여성들과 파괴당하는 환경이 기업에게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부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기도 하고.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먹는 거의 모든 물건들은 세계 무역의 산물이다. 옛날에는 꿈도 못꿔봤을 풍요로운 선택ㅡ 필리핀산 바나나, 과테말라산 커피, 브라질산 코코아, 미국산 청바지, 그리고 이런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미국산 쇠고기 ㅡ 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 모두는 현재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공범이다.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생산자도 아니고 소비자는 더더욱 아니고ㅡ 중간 과정을 담당하는 기업들을 위한?  '현대판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상품들이 태반이라 이들을 보이콧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맘에 안들면 미국산 소고기 안먹으면 된다는 MB의 논리가 떠오른다.) 지금으로선 '공정무역'상품들을 더 많이 소비하는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지만 그나마도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당장 거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싼 물건을 찾을 수 밖에 없는 빈민들은 속수무책이다.

오늘날 세계는 초국적기업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국가'란 틀로 '국민'이란 이데올로기로 묶어놓지만 국가의 결정은 거의 다국적기업의 입김에 휘말린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대체 누굴 위한 조치일까? 한우를 고급화해서 1억원짜리 한우를 만들라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야하겠지만 당장 빚에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국가 지원없이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그런데 한우 고급화에 꼭 미국산 소고기가 배경음악으로 깔려야 하는걸까? 모든것이 얽혀있고, 복잡해보이지만 본질은 딱 하나다. 더 많은 이윤. 사람이/자연이/동물이 얼마나 죽어가느냐는 값싼 동정을 위한 곁다리일 뿐. 사실 어찌보면 이 악랄한 체제를 유지해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광우병을 만든 장본인이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환경파괴를 기반으로 한 현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주류경제학의 핑계대신 당장 실행 가능한 작은 대안이라도 찾아가려는 노력이 훨씬 절실하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ㅡ 이 말이 유효하다면 작은 변화는 큰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지만 "이래갖고 세상이 바뀌겠어?"란 푸념이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독자들에게 저자가 던지는 충고 한마디. "사람들이 자신이 뭘 사는지 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수도 잇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것을 무시한다면 세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광우병은 자연/타인에 대한 악랄한 착취에 대한 경고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합류하고 있는 "폭력의 체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 책이 얇고 한정된 품목에 관한 주인공의 경험 위주라서 쉽게 읽히는 장점과 내용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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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5-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아는분과 이것에 대해 잠깐 얘기했었는데...
그시간에 우리 제이드님은 이 리뷰를 쓰고 있었군요

Jade 2008-05-04 12:09   좋아요 0 | URL
ㅎㅎ '공정무역'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협한 사고를 넓혀주는 책이었어요 ㅎㅎ

시비돌이 2008-05-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정무역이라는 것이 생협, 품앗이, 직거래 이런 개념들이 포함된 거 아닐까요? 어렵지만 지향해나가야 하는.... 화이부동하신 두 분이 친하게 댓글 달고 계시니까 보기가 좋네요. ^^ 근데 맞는 표현이긴 한건가? ㅋㅋ

Jade 2008-05-12 16: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어렴풋이 협소하게만 알고있다가 이 책 덕분에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었어요 ㅎㅎ

저 웬디양님이랑 친해요! 흐흐

웽스북스 2008-05-12 18:52   좋아요 0 | URL
저 제이드님이랑 친해요! 흐흐

누에 2008-06-0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ade님 덕분에 몇몇 생각 얻어갑니다.

Jade 2008-06-04 04:29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