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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무심결에 보관함에 담긴 책을 주문하며 '카불'과 '책장수'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에서 암담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읽지 않는 마음 따뜻한 '책장수'를 떠올렸다. 책 읽어주는 남편, 아버지, 동네 할아버지...책도 읽기 전에 나는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온갖 따스한 이미지를 버무려 만들어낸 '책장수'이미지에 푹 빠져, 어느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를 쓰다듬어 줄 살가운 온기를 만나기 위해 책을 집어들었다. 책 표지의 흙빛 담과 고개를 내민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던지. 어쩌면 나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서글픈 이미지에서 나만의 희망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코 온화하지도 자상하지도 않지만 나름 책에 대한 애정과 야심을 가진 '책장수' 가족의 이야기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끼니 걱정 없고 영어사용자가 세명이나 되는 이 집단은 아프가니스탄의 평범한 가족들보단 (경제적으로) 훨씬 살기 편한 중산층이지만 '이슬람'이라는 문화가 던지는 낯선 풍경들은 '남녀평등'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준다. 저자 역시 머무는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한대 쳐주고 싶을만큼 화가 났었다고 회상한다. 그들에겐 의문조차 들지 않을만큼 '당연한'것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지정학적 이유로 또는 종교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로 숱한 침략을 겪어온 나라. 책 중간에 수록된 카불의 흙빛 정경은 보기만 해도 먼지가 풀풀 날릴 것 같이 우울하다. 잦은 전쟁으로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 역시. 그나마 생기를 발산하는 건 무성히 피어올린 붉은 양귀비 꽃.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의 87%를 공급하는 '거대한 마약 공장'이랜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한 땅'에도 사람들은 또 하루를 살아내고, 숨 막히는 부르카 속에서도 매니큐어나 밑단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다. 손수레 가득 실린 선명한 색의 향신료들에서 기묘한 열정이 배어난다.
집안의 남자를 공부시키기 위해 학교는 고사하고 공장에 취직하거나 다른 집에 '팔려'가야했던 우리네 '언니'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지금 이곳에서 재연된다. 남녀 구별이 더욱 엄격한지라 차마 일을 하러 가진 못하고 '결혼'이란 거래에 맞바뀌어지는 여자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제품들이 그렇듯 "끼워 팔려가는"경우도 있댄다. 시집 간 후엔 남편의 '소유물'처럼 살아야 하고. 지금 우리 눈으로는 모든것이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코미디'지만 그들에겐 모든것이 당연한 일상이다. 책을 읽으며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슬퍼지기도 하지만 쉽게 그들을 동정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건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내는 그들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 때문이리라.
책장수 술탄 가족과 주변인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의 감정이나 생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결혼후 행실이 바르지 않아 가족들 손에 교살당한 자밀라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조카들에게도 무시당하며 사는 "하녀 고모" 레일라의 기구한 운명과 병든 노모와 굶주린 자식들 때문에 엽서를 훔친 목수를 끝내 감옥에 보내는 술탄의 냉정함을 그리면서도 마치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듯 덤덤히 서술할 뿐이다. 판단하지 않는 건조한서술은 읽는 사람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의 괴리에 대하여. 이런 면에선 아이들에게 읽혀도 좋을 것 같다. (책 전반으로 보자면 결코 '중립적'인것은 아니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가부장적 사회 윤리와 탈레반 정권의 잔학성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가지고 온 폐해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어버린듯"하다는 한계가 명시되어 있다.)
나는 모든 '인격화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끔은 종교 역시 일종의 '강요된 학습 효과'라는 불경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지 못했기에 믿지 못하는 '가련한 중생'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종교가 그들의 일부라면 존중해주는 것이 맞을테지만 '학대'에 가까운 여성차별을 보고 있자니 꽤나 불편하다. 역사에 어떤 경향성이라는게 있다면 ㅡ 기독교에서 여성 차별이 줄어들었듯 이슬람 여인들도 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혹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가장 인간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 - 어찌할 수 없는 '절대자의 뜻'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더욱 서글퍼진다.
뜬금없이, '오래된 정원'의 한 대화가 떠오른다.
"형..우리 이제 이짓 그만하자....지들끼리 천년만년 해 처먹으라고..."
"니가 안그래도 그 자식들 천년만년 해처먹을꺼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