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
리처드 G.윌킨스 지음, 정연복 옮김 / 당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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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 -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죽이는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능동성'과 '잔인함'에 이끌렸었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병이 많거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정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인데 "건강하지 못함"정도가 아니라 "죽음"이라니! 물론 직접 '죽이는' 말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왜 '죽다'라는 단어를 쓴건지 내내 궁금했었다. 사실 '건강하다'는 상태는 상당히 주관적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현대의학적 측면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본인은 몸이 안좋다고 생각하지만 의학적 검사상으론 '정상'으로 나올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에는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측면까지 포괄하기에 특정 기준으로 수치화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그런 난점을 피해가기 위해 평균 기대수명 및 사망율을 근거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 개인적으로는 '오래사는 것'보다 '짧게 살아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건강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에 '수명'을 중심으로 건강을 논의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여태 읽어왔던 의료행위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책들은 대개 윤리적 측면에서 '당위성'을 근거로 독자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그런 윤리적 당위성보다는 '통계자료'를 통해 설득하고자 한다. - 솔직히 말하면 통계 혹은 그래프 해석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책에 등장하는 많은 그래프들이 조금 짜증스럽기도했다 - 책의 주요 논지는 개인의 기대수명은 사회의 절대적 풍요로움보다는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상태를 벗어난 선진국에선) 소득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풍요에 더 영향받기에 소득격차가 적고 최빈곤층의 삶이 어느정도 안정된 사회일수록 더 '건강(오래 삶)'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소위 말하는 "분배중심"적 성격이 짙은데, 저자는 분배가 잘 된 나라일수록, 혹은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가 적을수록 성장이 더욱 촉진된다는 것을 (역시 통계자료를 통해)보여주며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것이 결과적으로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문구 하나. "부자는, 자기 동서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다" 각종 재테크 서적이 쏟아져나오고 너나할것없이 주식에 뛰어들 정도로 "돈 벌기"가 중요해진 요즘, 사람들은 왜 돈을 벌려고 할까. 정말 "생계를 위한 돈"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다른사람들만큼 벌기 위해' 혹은 '다른사람보다 조금 더 벌기 위해'서이다. 하긴 계속 집값은 오르고 고정 수입은 늘지않는데 가끔 주식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사람이나 부동산 재테크로 앉은자리에서 몇억씩 벌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배아플만 하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 교육비도 만만치않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리 잘 사는 집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종합학원이나 다른과목 개인지도를 병행해서, 평균 1인당 월 100만원 이상씩 든다.) 남들 다 하는거 돈 때문에 못한다면, 혹은 돈이 없어서 더 큰돈을 벌 기회를 놓친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스트레스다. 저자는 '금전적 스트레스'를 주로 하위소득그룹에 한정짓지만 생각해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돈'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 만성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온갖 질병들....굳이 신경-내분비-면역 체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하지 못한 삶과 연결된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아쉬운것은, 소득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사망률이 높고 기대수명이 낮다는, 즉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잘 보여주지만 정작 대안은 어물어물 피상적 제시만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간의 신뢰를 높이고 소득격차를 줄여 사회응집력을 키우자는 논조인데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처음부터 객관적 자료 중심으로 주장을 펴 나가기에 윤리적 당위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사회문제에 대한 공정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정작 대안이 없다면 무엇을 위한 분석이란 말인가.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읽었던 "서로주체성의 이념"이 너무 강하게 각인된 탓인지, 책을 읽으며 내내 근본적인 대안은 '서로주체성의 확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간의 신뢰' 혹은 '사회응집력'이라는 건, 통계자료를 통한 논리적 설득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치관부터 바꾸어야 하는건 아닌지. 그런면에선 차라리 개인의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차피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이성적 설득보다는 감성적 충격으로 인한 경우가 더 많으므로.)

'의료의 공공성'보다는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성격이 강하다. '의료'분야에 국한시킨다면,  한울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의료"가 더 나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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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9-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관련 분야의 이야기라 그런지 글에서 불꽃이 튀네요.. 추천 2개를 해드리고 싶은 글입니다^^ V

Jade 2007-09-14 01:13   좋아요 0 | URL
앗 이런 ^^;; 고마워요 승주나무님 ^^

2007-09-17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