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김선우의 글은, 한입 베어물면 달큰한 물이 줄줄 흐를것 같은, 팔딱팔딱 뛰는, 싱싱하고 탱탱한, "생명"이 느껴진다. (아직도) 차마 놓아주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그녀를 알게되었고, 그녀의 글에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그녀의 산문집과 시집은, 때로는 정처없이 떠난 여행길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멍하니 앉아 울고있는 나를 다독여주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김선우'란 이름에서 이유없는 정감과 사랑을 느끼곤 한다.

노오란 책표지가, 그 흔한 비닐코팅도 되어있지 않은 종이질감의 투박함이, 불현듯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가방에 넣어다니는 통에 어느새 군데군데 얼룩이 져버린것이, 은연중에 상처받기 쉬운 시인의 감수성을 나타내는것 같아서. 혹은 순간순간 이는 마음의 결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나를 보는것 같아서. 이 책은 상당부분이 주간지 등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묶어놓은 것이라 곳곳에 시인의 "분노"가 많이 보인다. 천상 시인의 글인지라 분노가 촉발되는 계기나 그것을 풀어놓는 방식 역시 너무나 '싱싱'하고 '천연색'이라 오히려 마음에 날카롭게 꽂히는 구절이 많다. 엄청난 수재민을 남긴 태풍 루사의 흔적에서 어머니 대지에게 기도드리는 글, 2006 월드컵 첫 승리를 안겨준 토고를 보며 제국주의의 흔적을 발견하는 슬픔. '신자유주의 좌파'라는 해괴한 신조어를 만들어낸 현 정부에 대한 호소 등. "아름다움을 이해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치가 인민을 구원한 적은 없다"는 구절에, - 그녀의 어느 산문집에 수록되었던 -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미학적으로도 옳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책의 제목은, 그녀의 첫 시집에 수록된, 같은 이름의 시에서 따 온것이라 한다.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이 집 한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러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첫장은, '인디고 서원'이라는, 참고서가 없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부산의 한 공간에서 시인과 아이들 및 몇몇 어른들의 대화다. 소위 입시에 찌달리는 대다수의 아이들과 달리 자신의 '진정한' 꿈에 대해  말하고, 루시드 폴의 노래 -'물이 되는 꿈' 를 같이 읇조리고, 시와 문학에 대해 자유롭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깝다. 두번째 장은 칼럼등을 모은것이고 세번째 장은 문학잡지에 기고했던 글인데 '비평 역할을 하지 못하는 비평'에 대한 '비평'이라 문외한인 내게는 생소했다.

벌써 9월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덜컥 결정한 휴학에 한껏 웅크렸던 마음이, 김선우의 글을 읽으며 슬슬 풀어진 듯 하다. 시인은 말한다.

"저는 시인은 일상에서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시인의 몫인 거 같아요. 일상생활이란 게 일상의 면면이 모두 소중한 거면서도, 또 일상의 속도에 매몰되기가 쉽지요. 사회생활의 속도에 따라가주기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추어 서서 뭔가에 대해 골똘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시인이라는 존재들은 요구되는 속도에 반기를 들며 일상의 사소한 결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의미들을 발견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아주 적극적으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가 부여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저는 하거든요. 그게 시인이 대단한 무엇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시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가장 예민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일상의 결을 살려주는, 시인의 감수성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보단 다른 산문집 - 물 밑에 달이 열릴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 온 설탕같은 키스들 등 - 을 추천한다. 분노해야 할 때 제대로 분노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직 난 시인의 '분노'보다는 '위로'가 필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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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0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오르는 책들마다...

Jade 2007-09-05 01:27   좋아요 0 | URL
ㅋㅋ 저 지금 "서로주체성의 이념"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ㅎㅎ 술마시면선 루시드폴 노래를..ㅎㅎ

마늘빵 2007-09-05 19:50   좋아요 0 | URL
서로주체성은 시간이 좀 걸릴텐데 그래도 읽고나면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