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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올해 초인가 진중권씨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보고 알라딘을 뒤적뒤적 하다 얼결에 이 책을 주문했다. 강준만이라는 이름은 - 이 책이 처음 접한 그의 저서인 내게는 - 그때나 지금이나 낯설어 한동안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알라딘 서재 곳곳에서 강준만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또 그의 글을 읽다 근 6개월만에 집어들었다. 처음 접한 책이 쉽게 읽히는 글이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한권만 읽어도 대충 개인의 특징이 드러나는 저술가도 있지만, 글쎄 이 책만 봐서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 아직 머리가 덜 자라서 - 기존의 의견들을 잘 정리해 놓은 책보다는, 새롭고 신선한 시각을 던져주는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유난히 인용문이 많은 - 어떤 '사실'에 대한 인용문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견'에 대한 인용문이 많다 - 이 글은, 담고있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솔직히 썩 맘에 들진 않았다. 하긴 집필 의도부터가 이론보다는 "생활속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한국인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었으니. 다른 책들과 달리 일간지나 주간지, 월간지 등 정기간행물에서 따온 인용문이 대부분이다. 나같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사람들에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뒤집어 보면 별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 적어도 내가 '듣고 본'바에 의해서는 - 저자가 결코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맹숭맹숭한 사람은 아니기에, 이 책이 고유의 '특징'이 없는것은 아니다. 분명 비판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접근하지만, 흔히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특징들 - 냄비근성, 가족주의 등 - 에서도 '장점'을 찾아내는 입장들을 고루 포진해 놓았다. 소위 '지식인'들이 대중들의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 날카롭게 쏘아대는 경우가 많은데 - 얼마전 있던 '디 워'논쟁 처럼 - 이 책은 사회가 그렇게 흘러왔으니 그럴수 밖에 없지 않냐며 일단 긍정하는것도 인상적이다. 모순되는 행동을 두고 이중적이라며 비판하기 보단, 모순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 - "역설"의 경지! -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경제적 보수성은 한국 경제의 본질이다. 해외의존도가 70%가 넘고 늘 위태롭다. 사회복지는 박약하고 자녀교육은 살벌한 계급전쟁이다. 경제적 보수성은 생존권 차원의 문제다. 김대중/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조차 보수신문을 열심히 구독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붓뚜껍 누르는 일에선 정치적 비주류를 지지할망정 신문 하나 보는 일이라도 경제적 주류 근처에 가까이 가고 싶은 그들의 심정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야 어차피 직업 삼을 일이 아닌 이상 큰 의미는 없는 것이다" (p.292 맺음말 중에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말들, 혹은 가슴에 와닿는 문구가 있으면 여지없이 밑줄을 긋곤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책엔 저자의 말보다 인용구들에 더 밑줄이 많다. 초반부엔 극단적으로 말해서 "짜집기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것만 "창조"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흩어져 있는 사항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꿰어내는 것 역시 "창조"다. 더욱이 요즘처럼 온갖 정보들과 각자의 관점에서 쓰인 "정당한" 논리들이 판치는 때라면 오히려 후자가 더 의미있을지도.
본문에서 여러 인용문들을 통해 "객관적"접근을 중시했다면, "맺음말"만큼은 - 리영희씨와 노무현 정권이라는 구체적 화두를 놓고 - 저자의 의견을 마음껏 피력한다. 치우친 의견이라 말 할수도 있겠지만, 저자 자신의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 같아 쫙쫙 밑줄그은 구절이 많다. (개인적으로 옳건 그르건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에 매력을 느끼는 지라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를 꼽으라면 단연 맺음말이다.)
개인의 저술이지만 동일한 현상을 두고 여러 사람의 엇갈리는 입장을 많이 실어놓은지라 '중립적 분석'이라는 느낌이 남는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라던데, 다른 책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