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음 / 북피아(여강)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몰락해가는 한 가문이 있다. 한때 장군도 있었고 정치가도 있었으며 부유한 지주도 있었으나 지금은 울음으로밖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33살 백치 벤지와 누이 캐디를 사랑해서 자살한 하버드생 퀜틴, 누이의 사생아를 괴롭히고 양육비를 가로채는 수전노 제이슨, 그리고 어머니 캐디와 비슷하게 방탕하게 놀아나는 사생아 퀜틴이 있을뿐이다. 주인공들의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알콜중독자로 아들의 자살을 뒤따르고 어머니는 늘 곧 죽는다는 말과 눈물을 달고사는 중증 우울증환자다. 한때 번성했던 콤프슨 가는 운명이라는 올가미에 죄여 서서히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그러나 독자를 압도하는 것은 음습한 줄거리가 아니라 뒤섞인 퍼즐조각같은 서술방식이다. 주변묘사와 주인공들의 독백은 시공간을 마구 뛰어넘는다. 특히 첫장부터 순전히 연상에 의존한 백치 벤지의 서술은 100여페이지를 읽는 동안 독자를 공황상태에 빠뜨린다. 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나는, 여간해선 곧바로 재독을 하지 않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곧 다시 읽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들었다.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문맥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끼어들었던 장면들은 모두 어떤 사건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구성은 1928년 4월7일 (벤지), 1910년 6월 2일 (퀜틴, 자살한 날), 1928년 4월 6일 (제이슨), 1928년 4월 8일 총 4부분으로 각각의 날들을 묘사하지만 연상으로 이어지는 회상을 통해 1900년 즈음부터 중간중간 끼어있는 줄거리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책 뒤엔 소설엔 등장하지 않는 콤프슨 가의 가계도 및 인물설명까지 있다. 마치 실존했던 가문의 연대기를 보여주듯.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두번째 읽을때도 모든 연결고리를 다 파악하기는 힘들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아도 장면의 전환이 각각 어떤 날인지가 더 궁금해 또 다시 읽어보라 유혹한다. - 1970년에 펭귄출판사에서 나온 영문판에는 "Richard hughes"가 쓴, 좌절하지 말고 적어도 두번이상 읽어보며 마치 새로운 책을 읽는듯한 발견의 즐거움을 누리라는 격려(!)문이 있다. - A4 의 삼등분쯤 되는 크기의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낑낑대며 두번 읽었건만, 아직 성에 안차(!) 영문판을 집어들었다. 어려울 걸 알면서 괜한 승부욕(!) 때문에.

먼저 쓰여진 알라딘 리뷰를 보니 전부 책 가득한 오타이야기 뿐이다. 내가 구입한 책은 2006년 4월에 2쇄로 발행된 책인데 다행이 얼마간 수정한 모양이다. 곳곳에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류가 간간히 보이고 더러는 해석이 어색하거나 한 단락이 반복되는 등의 오류가 있긴 있지만 이전 리뷰에서 지적했던 "창녀리 언덕(원래는 갈보리 언덕)"이나 "qkek거북(바다거북)"같은, 어처구니없는 오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번역소설을 읽을 땐 - 더욱이 포크너처럼, 장황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작품은 -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아 짜증날 때가 많은데, "qkek거북"같은 오타까지 수두룩하다면 정말 책 읽을 맛 안나겠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시 수정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사실 난 문학에 문외한이라 몰랐지만) 포크너는 20세기 미국 문학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질정도로 '대단한' 작가라는데. 나처럼 선뜻 영문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정도 수고는 필요하지 않을까.

화자가 바뀌며 달라지는 인물묘사도 뛰어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의 묘미는 '발견의 쾌감'인듯 하다. 소설에서 지적 도전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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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쩌면 요로코롬 리뷰를 잘쓴당가!
^^/

Jade 2007-08-27 11:27   좋아요 0 | URL
앗 부끄러워요 ^^;;

2007-08-2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