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중 아이들과 읽어 볼 ..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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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분명 내용은, 카스트라는 천형을 극복한, 분명 희망적인데. 신을 믿는 이유는 -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 절망속에서 희망을 얻고자 함인데, 도리어 신에게서 버림받았다니. '버림'받는다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라는것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뒤의 목적어가 '버림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신'도' 버렸다는 것은, 그 전에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말인데, 신은 사람을 '버릴'수 있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 신은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걸까. 짧은 머리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불가촉천민. 어렸을 적 세계위인전집에서 '간디'를 읽으며 처음 접했던 단어인것 같다. 닿을 수 없는 사람과 닿을 수 있는 사람. '닿는'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 생소하게 다가온다. 인도 역사나 문화에 문외한인지라 어디에서 기원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왜 닿을수조차 없는, 같이 숨쉬는 것조차 꺼려지는 계급을 만든걸까. 같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들이 '불결한'존재라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아주 멀리 쫓아내 버리고서 '닿을 수 있는'사람들끼리만 구성된 '깨끗한' 사회를 만들면 되지 않나. 결국 자신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그 사람들에게 맡겨놓고서는 - 뒤집어 말하면, 그 사람들이 없으면 자신들의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데 - 돌아서선 그들때문에 땅과 물이 더렵혀진다며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쫓아내고 경멸하다니! 카스트 역시 인도 전통이라고, 바깥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럼 과연 전통이란게 뭔지, 또다시 흐리멍텅해진다.

인도의 풍습이나 - 신상을 집에 두고 매일 기도드린다든지, 태어나자마자 힌두교인으로 살아간다든지 등등 - 생활사에 무지해서 책 곳곳의 풍경들은 낯설기만 하다. 하다못해 이름과 애칭의 연관관계역시 헷갈리니까. 왜 이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온갖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며 용기와 감동을 얻고싶었던건 아니었다. - 이 책은 그런 '감동'면에서는 오히려 떨어진다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눈물을 자아내는 극적묘사나 감상적 문구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당시의 정황설명이다. '다무'와 '소누'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 의 회상이라 주인공들의 감정이 드러나긴 하지만, 대부분 남 얘기하듯 딱딱 끊어진다. -  사실 부끄럽지만 아직까지 카스트 제도가 지속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노예가 없어진것처럼, 카스트도 어느순간부터 없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아직까진 출신계급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책을 읽고싶어졌다. 잘못 알고 있었다는 부끄러움과, 이제라도 알아야겠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위대한 현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와 바바사헤브(달리트의 권리를 위해 헌신한, 나중엔 자신들을 버린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사람)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사실은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위대한 사람은 모든 방면에서 위대할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 때문에, 아마 이 책이 아니었으면 무심결에 '간디가 옳다'라고 했을것이다. 아무생각없이. -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지'상태에서 어떤 결정이나 판단을 내린다면 '죄'가 될수도 있다! - 간디와 바바사헤브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대립한건지, 또 양쪽은 각각 어떤 입장이었는진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달리트들에게 있어서는 간디보다 바바사헤브가 훨씬 더 위대한 현인이리라.

바바사헤브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들을 버린 힌두교를 똑같이 '버린' 용기는 대단하다! 한순간에 버림'받는'객체에서 '버리는' 주체로 상황을 엎어버렸으니 - 물론 '버리다'는 표현히 적절하지 않다는 건 알고있다. - 확실히 그는 '삶의 주체'로 살았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기 삶을 갖고 태어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타고난 굴레때문에, 환경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때문에. 난 운명은 '선택'하는 것이라 믿는다. '타고난 사주'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각각 타고난 천성에 따라 어느정도 삶의 윤곽이 잡힌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속박되지 않을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단, 뒤에 따르는 시련과 고난을 어느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것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전제하에. 고난도 삶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사랑하고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 인생은 '잉여'가 없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새 날들일테니. 물론 말이 쉽지 실제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은 안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어떤 절대자가 있어 내 앞날을 주무른다 생각하며 무력하게 살아가는것보다는, 어떤 상황이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순전히 자기 선택에 달려있다 믿는게 훨씬 희망적이지 않은가! 수많은 달리트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순응하는 사람과 반항하는 사람이 나뉘는 건, 그들의 천성이나 운명보다는 그들 각각의 선택이라고 보고싶다. 바바사헤브가 바란건 높은 카스트들의 동정이 아니라 달리트들의 자유였으니까.

책 뒷면엔 '신조차 내 꿈을 빼앗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내 꿈을 포기하지 않길 선택했다."라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든다.

책 중간중간 끼어있는 사진들은, 글 만으로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인도의 세세한 풍경들을 전해준다. 이국적 향취를 느끼며 동봉된 엽서에 편지를 써 보내고 싶다. 주위의 '심리적 달리트' - 운명과 상황을 원망하는 사람들 - 들에게 보내고 싶다.  - "당신의 삶을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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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9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 보고 이 책인줄 알았어요. 찜해놓은 책인데 괜찮은 선택인가 보군요. :)

Jade 2007-07-29 13:50   좋아요 0 | URL
ㅎㅎ 뭐랄까 저는 원체 인도에 대해 아는게 없었던 터라 나름 재미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