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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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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 이 책 표지도 발랄하다. 무언가 비현실적인, 새초롬한 입술들. 각지면서도 삐뚤빼뚤한 제목. 경쾌하지만은 않은 비밀을 담고있을것 같은 분위기.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정이현 작가를 처음 알았다. 소위 '먹물'근성이랄까. 가벼운 소설은 - 특히 연애소설이라면 - 거의 읽지 않다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일때,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의미부여조차 귀찮아질때, 반 패닉 상태에서 글을 읽었었다. 소소한 일상을 미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질리지 않는 문체와 크고작은 반전들이 나쁘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확실히 전작보다는 무겁다. 오은수의 삶이 침울하지만은 않은 - 곳곳에 톡톡 튀는 핑크빛이 숨어있는 - 보랏빛이었다면 이 작품은 좀더 짙은, 좀더 무채색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열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고독하다. 김선우 시인은 '자유를 알고 만끽할 준비가 되어있는 외로움은 존재의 조건을 알아챈 외로움'이라며 오히려 고독을 주라고 격려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유를 대가로 고독을 지불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혼자 노는데 익숙한 듯 하지만, 사실은 깊은 공감을 갈구하는, 그러나 태연한척 하는 사람들.

전작에 이어 이 책에서도 '결혼'이 주요 화두다. 그러나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도, 결혼생활중인 사람도, 결혼을 거친 사람도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다. 그저 별 문제 없으면 거쳐가야할 통과의례이자, 같이사는 사람도 그저 '같이사는'것 뿐. 주인공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상태'는 세밀하고 건조하게 나타나지만 마음을 뒤흔드는 '감정'은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약간은 냉소적인, 흑백처리한 디카로 찍어내듯 풍경과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어투. 살아가며 저마다 자신만의 '방어체계'를 만들어 내고 세상에 대한 '틀'을 세운다지만, 여기 주인공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결정지운것 같다. A는 B고 B는 C라는, 자신만의 법칙들을. 자신만의 둥지에서 웅크리고 있는 새들처럼.

사실 그렇게 우울한 소설만은 아닌데, 캄캄한 새벽이라는 시간적 배경탓인지, 소설을 읽고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회색빛이랄까. 책 뒤에 붙은 해설은 친절하게 소설과 소설속 인물을 분석해 주지만 왠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왠지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평범함을 연기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남 같지 않아서일까. 혹은 세상의 모든 환상이 허구라는 초라한 진실을 맞닥뜨리기엔 아직 이른 탓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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