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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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문화사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번역본은 원제와 번역본제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 실정에 맞게, 혹은 주의를 끌 수 있는 제목으로 탈바꿈 하기 때문에. 보통 제목과 간단한 브리핑을 보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읽고 나선 많은 경우에 책 내용에는 원제가 더 부합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al of the world' - 세상의 근원이라는, 플로베르의 그림처럼 무언가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 인데, 이 책만은 '문화사'라는 새 이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여태까지의 여성생식기에 관한 - 대부분 여성이 쓰고, 그곳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 다른 책들에 비해 건조하고 학구적이다. 문체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랄까. 여성 성기에 대해 비합리적 경멸과 학대가 자행됬던 시기를 중심으로 - 지금은 얼토당토않게 보이는 것들도 그 당시엔 진실이었다! - 그곳에 관한 시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여러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도 여성생식기에 관해 공공연하게 논하는 건 약간은 민망하다. 생식에 관한 부분이라면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성적 욕구와 관련된 부분 - 특히 클리토리스 - 에 관해서라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러니 예전엔 오죽했을까. 자궁이나 클리토리스가 히스테리의 근원이라며 무분별하게 절세술을 시행하던 때는 그곳이 '은밀한 부분' 정도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문화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주로 사회적으로 여성생식기가 어떤 의미를 지녓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클리토리스보다 질 오르가슴이 더 우월하고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프로이트 이론, 클리토리스 절제, 처녀성,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등등. 이 책을 읽다보면 워낙 끔찍한 이야기가 많다보니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 특히 생식기는 - 핍박만 받아온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현대로 오면서 점차 '세상의 근원'이라는 신성한 대상으로 - 이점은 고대와도 통하지만 이 책에는 고대 이야기는 많지않다. - 평가받고 있고, 억압받던 시대에도 여성의 질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성의학쪽에 관심있는 독자로서, 무언가 '버자이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나 의미를 부여해주길 예상했던 내 기대에는 아쉽게도 못미치는 책이다. 이전에 읽은 책 영향인지 약간은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무언가를 기대했으니까. 자신의 일부분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이고 - 건조한 객관적 시각 말고! - 사랑스런 서술을 기대하는, 감수성 예민한 여성 독자라면 캐서린 블랙레지의 "V story"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보다 약간 양이 많은데 음부가 신성하게 여겨졌던 구석기시대부터 수많은 오해를 받았던 시대에까지 여성 성기에 대한 시대적 평가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 자궁속의 태아도 오르가슴을 느낀다거나, 질이 '블라인드 사이트' 능력이 있다거나, 코와 질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코에도 클리토리스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 - 들을 접하며 신비로운 몸에 대해 자긍심을 일깨워준다. 또 여성의 오르가슴에 새로운 의미 - 생식기 내부의 난자와 정자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적 산물이라는 - 를 부여하며, 오르가슴의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버자이너 문화사'의 저자는 '탕아'라며 일축했지만,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슴의 기능'이란 저서를 통해 더욱 자세히 밝혔다.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이란 부제처럼, 일반 교양서적 같은 문체로 각 문화에 여성 성기가 어떤식으로 찍혀왔는지 찬찬히 그 단면들을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