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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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1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광주에 다녀왔다. "화려한 휴가" 개봉이 얼마 안남아서일까. 불현듯 망월동 묘지에 가고싶었다. 새 소리마저 구슬프던 그곳.
1985년생인 나는, 부끄럽지만 대학교 2학년때까지 1980년의 광주를 알지 못했다. - 물론 지금도 책이나 사진등을 통해 아주 조금 알 뿐이지만 - 수능에 매진할 때 임철우의 '사평역'은 알았지만 '봄날'은 그 존재조차 모를정도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같은 책을 보면서도 사실 광주의 참극은 파란만장했던 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 - 똑같은 텍스트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로 다가온다 -이 그토록 실감나게 다가올 줄이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지나가듯 물어본 "'봄날'은 읽어 봤냐?" 그때부터 광주는 역사속 사건이 아닌 어떤 실체로서 다가왔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읽으며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고 분개하기도 하고 소위 지도층이란 집단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일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광주를 알게되면서는 무관심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났다. 채 3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그 일을 겪어낸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을 받았던 공수부대원들조차 그 경험의 충격으로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오히려 더 고통받고 있는데 어쩌면 이리도 몰랐을까.
인간은 이성적 설득보다 감성적 충격에 더 극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딱딱한 역사서에서 만나는 광주와 구체적이고 생동적인 장면으로 만나는 광주는 간접경험의 스케일이 다르다. 이 책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처럼 -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면이 읽는 사람을 더 슬프게 하지만 - 구체적 인물과 사건들의 집합체로서 그 날을 묘사한다. 잔혹하지만 차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책. 여느 슬픈 드라마에서 느끼는 마음의 동요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앞에 슬픔마저 침묵하는, 오히려 가슴에 불을 지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책.
2005년 처음 망월동을 찾을 땐 텅 빈 묘지가 을씨년스러워 씁쓸함을 느꼈었다. 다시 찾은 망월동은 어쩐일인지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무슨 기념촬영을 하는듯이 보여서 무슨 날인가 했더니, 그날 법무부장관을 비롯하여 17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참배예정이 잡혀있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참배식이 거행되는데 어떤 의미에선 저번보다 더욱 씁쓸했다. 꼭 기자들과 측근들을 대동하고 보란듯이 참배해야 하는건가. 혼자 조용히 와서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눈물흘리면 안되는 건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은, 많은 경우에 1980년의 광주를 잘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어떤 '역사속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 아직 대학의 노래패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지만, 그 노래의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와는 달리 엉뚱한 장면에서 불리기도 한다 - 아직도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선 광주를 "남파간첩"들의 폭동이었다고 묘사해 놓는다. 그리고 아직 그 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자라고 나서서 사죄하는 사람이 없다.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고 원작 소설을 읽으며 80년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젊은 시절이 어땠는지 알고싶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억압과 통제속에서도 6월항쟁 및 여러 운동으로 많은 것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에 나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의무감 같은것을 느끼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나면 어떨까. 나같이 어린 관객이라면 충격적 영화한편으로 그치지 않고 이 소설도 읽고 광주에 대해 더 공부하게 되길,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길. 무언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길
신영복 선생님 글의 문구가 떠오른다.
"The longest journey for anyone of us is from head to heart.
Another longest one is from heart to f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