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이 예언한 십승지마을을 찾아 떠나다
남민 지음 / 소울메이트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는 게 심드렁하거나 일상에 염증을 느낄 때,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할 때 이상향을 동경하게 된다. 그곳이라면 현실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상향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이상의 공간이다. 중국의 무릉도원과 서양의 아틀란티스와 엘도라도가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토피아는 어디일까?

<정감록이 예언한 십승지마을을 찾아 떠나다>에 의하면 한국의 유토피아는 십승지(十勝地)라고 전한다. 한국의 십승지는 서양이나 중국의 이상형처럼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실체가 분명한 공간이란다. 십승지는 전란이나 폭정을 피해 은둔의 땅으로 숨어드는 피신의 장소여서 높고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것. 이것이 십승지마을이 서양이나 중국의 이상향과 다른점이다.

"십승지는 실체가 있는 마을이고 현실 세계라는 점이 무릉도원과 다르다."(p32)

저자는 십승지의 전제조건을 이렇게 알려준다.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하며, 물이 마르지 않아야 하며, 농사지을 땅이 있어야 한다고. 외부와 차단 된 곳이라 십승지에는 전염병에도 끄떡없다. 과연 이런 곳이 있을까? 있다. 선조들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십승지마을은, 풍기의 희여골, 한국의 무릉도원인 봉화 춘양, 은둔하기에 안성맞춤인 보은 속리산, 불치병도 낫게 하는 힐링도원 남원, 삼척 김씨가 숨어온 땅 영월 연하리, 무주, 부안, 예천, 공주 등이다. 이 가운데 지척에 두고 있는 영월의 연하리와 미사리, 노루목이 십승지라는 사실이 놀랍다. 영월은 단종과 김삿갓과 관련된 역사의 고장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의 유토피아라니!

연하리와 미사리, 노루목은 평범하고 평온한 산골마을로만 알았는데, 미사리에 기묘사화로 짧은 생을 마감한 조광조의 후손들이 숨어들었단다. '미사리'라는 지명의 의미를 알고나니 애잔하게 다가온다. 미사리, 곧 죽지 않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젊은 나이에 사화로 희생 된 조광조의 후손들이 삶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짐작이 간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도 전쟁이 일어난 줄 몰랐던 미사리는 2010년 광우병 파동이 일었을 때에도 이 마을의 소들은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값을 톡톡히 한 마을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월이 십승지마을인 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박물관의 고장쯤으로 인식했을 텐데, 발품을 팔며 전국을 1년 반이나 뒤진 저자 덕분에 영월의 숨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김삿갓계곡으로 불리는 노루목과 삼척 김씨가 숨어온 연하리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다.

"허연 머리 너는 김진사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일 겨우 알 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세상을 유람하던 김삿갓이 샘물을 떠마시면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탄스럽게 읊은 시다."(p218)

매주 주말마다 현지 답사를 다니며 마을 주민과 향토사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정사와 야사, 구전을 모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십승지마을에 사는 주민이 이 책을 읽으면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이 고취될 듯 싶다. 자신이 사는 마을이 그렇고 그런 시골 마을이 아니라 한국의 유토피아니 말이다. 과거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십승지를 찾았다면, 현대인들은 몸과 마음의 쉼을 얻기 위해 십승지를 동경한다. 삶의 무게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이 책과 함께 쉼과 치유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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