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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라진 세상 - 인간과 종교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로널드 드워킨 지음, 김성훈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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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50만 년 전 원시인 사회가 일정한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교환하던 무렵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하루라도 크고 작은 전쟁이 없었던 날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니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다. 인류가 치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종교로 인한 갈등과 다툼이 전쟁으로 번진 경우가 허다하다. 십자군전쟁, 위그노전쟁에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 세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이슬람 국가들의 반미 시위는 종교와 관련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종교 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라는 등식 앞에서 우리는 종교가 무엇인지 묻지 아노을 수 없다.
무신론자인 로널드 드워킨이 쓴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종교란 '신'의 개념이 아닌 개인 고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지탱하는 신념이라고 말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종교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종교에 관한 정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드워킨은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면서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을 믿지 않지만 인간보다 위대한 어떤 존재를 믿는 경우가 그렇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목숨처럼 여기는 신념을 지키면 신념이 종교이며, 종교는 신보다 더 깊다는 것이다. 이렇듯 드워킨은 종교로부터 신을 분리하면 종교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종교에 왜 초자연적인 인격적 존재가 필요 없는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신보다 중요한 가치가 바로 '신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각자의 삶을 차원 높은 예술작품으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유신론자인 나는 그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하기가 어렵다. 인생이라는 것이 신념만으로 살아지던가. 우리의 삶을 영원불멸의 예술작품으로 빚어내기를 바라며 신념을 지킨다고 그렇게 되던가. 아니다. 인생은 신념대로,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신념과 상관없는 뜻밖의 일이나 재난을 언제 당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며, 우리를 위협하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일과 언제 맞딱뜨릴지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유신론자나 무신론자 모두에게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신이 없는 종교’를 믿는 ‘종교적 무신론자’인 드워킨에게도 이 문제는 중요했다. 그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을 숭배하거나 찬양하진 않았다. 그는 지능을 갖춘 초자연적인 힘, 즉 신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삶을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가치와 연결해 좀 더 심오한 윤리, 심오한 존재로서 사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을 정립하기를 요구한다. 인생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신을 배제한 종교나 신보다 신념을 우위에 둘 수는 없다. 신념은 신앙을 견고하게 해주는 근육일 뿐이며 신을 배제한 종교는 자기체면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