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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 -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ㅣ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1
오형규 지음 / 한국문학사 / 2013년 12월
평점 :
*경제학은 인문학의 동반자
<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는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경제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경제학에 인문학을 접목한 책이다. 과학과 경제학, 역사와 경제학, 소설과 경제학, 영화와 경제학 등 인문학과 경제학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어떤 원리가 작동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가운데 소설과 영화 속에 스며든 경제학의 원리를 찾아낸다는 발상이 신선해 먼저 펴들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하면 개구쟁이 톰이 울타리에 페인트 칠을 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싸움을 한 벌로 페인트 칠을 하게 된 톰은 페인트 칠이 하기 싫어 꾀를 낸다. 페인트 칠이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일인 양 태연하게 하기로 한다.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기 위해서다. 때마침 친구 벤 로저스가 사과를 들고 나타나 톰을 놀리지만, 벤이 놀릴수록 톰은 아랑곳 않고 더욱 재밌고 진중하게 페인트 칠에 열중한다. 그러자 벤은 톰에게 사과를 통째로 주며 페인트 칠 하기를 간청한다. 지나가던 친구들도 자기 물건을 톰에게 주고 페인트 칠에 동참한다.
여기서 톰의 행동은 경제학의 대전제인 '희소성'을 가리킨다고 한다. 누구나 욕구는 끝이 없는데 얻을 수 있는 자원은 희소하기에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p147) 이 장면을 경제학과 연관한 저자의 통찰이 놀랍고 신선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 경제원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경제원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갈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톰 소여의 모험>의 배경이 된 미국 중서부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해니벌은 톰 소여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는 것. 톰의 집, 베키의 집 등의 푯말이 붙어 있는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관광객에게 돈까지 받고 페인트 칠을 시킨다고 하니 톰의 잔꾀가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바가 크다.
희소성을 논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게 명품일 것이다. 희소성을 이용해 돈을 버는 명품업체 가방의 경우 한정판으로 몇 백 개만 만들어 제품마다 일련번호를 붙여서 판매하는데, 한 개에 1,000만 원이 넘어도 구매 희망자들은 몇 년씩 기다려 기어코 손에 넣는다. 귀할수록 갖고 싶은 심리를 이용한 것인데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줄거리에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게 고작인 나의 책읽기와 저자의 깊고 넓은 독서와 너무 비교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는 팡틴이 장발장의 공장에서 해고되는 과정을 경제학의 '주인- 대리인 문제'라고 말하며 감시비용에 대해 설명한다. 감시비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포장이사, 버스기사와 택시기사의 월급제를 예로 들고,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머슴을 오늘날 일반 사무직에 비유하고 <동백꽃>의 소작농을 영업사원에 비유해 감시비용의 유무를 쉽게 설명해준다.
영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선 한쪽의 순위가 올라가면 다른 한쪽의 순위가 내려가는 형태의 경쟁인 '위치적 군비경쟁'과 군비경쟁의 과열을 막는 '군비축소협약' 에 대해 이야기 한다. 프로야구에서 한 팀 엔트리에 드는 선수를 25명 이내로 묶는 것과 대입 논술시험에서 글자수를 제한하는 것, 신입사원 채용 시 자기소개서에 분량 제한을 두는 것은 군비경쟁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준다.
역사를 모르고선 경제를 논하지 말라는 역사와 경제학의 만남에선, 스스로를 중화러 부르며 세상의 중심이자 가장 문명한 나라로 여겼던 중국이 4대 발명품을 갖고도 근대화에 뒤쳐진 까닭에 대해 말한다. 중국이 근대화에 뒤쳐진 까닭은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뒤쳐진 이유와 비슷하다.
"고려 때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직지심경)을 가졌고, 최무선이 화약을 개발했으며, 측우기 해시계 등을 발명한 조선 세종 때의 과학기술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에 이어 20세기 전반기를 식민지로 살아야 했다. 역시 사유재산권 보장이 미흡했고, 기술의 수혜자가 다수의 국민이 되지 못했으며, 대외적으로 폐쇄적이었던 탓일 것이다. 오늘날 개방적인 남한과 폐쇄적인 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것도 그 증거다. 폐쇄성은 결코 개방성을 이길 수 없다."(p99)
역사와 과학, 문학과 대중문화, 사회과학은 경제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동반자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화폐가 생기기 이전의 물물교환이 경제활동이고, 과학의 발달이 경제 발달로 이어지듯 경제학은 인간의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즉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는 인문학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쓰레기 종량제를 경제원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환경사업으로 생각했는데 어떤 현상이나 제도를 보는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형규 저자는 어렵고 복잡한 경제용어와 경제원리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준다. 다양한 학문에 조예가 깊은 분이기에 쉽고 명쾌하게 경제학에 관해 설명하지 않나 싶다. <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는 경제관련 도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구성도 좋고 내용도 알차고 유익하다. 지루하고 딱딱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는 역사서로 탄생시켜 '대중역사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학자처럼 저자도 '대중경제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독자들의 큰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책을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국문학사의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시리즈는 두번째 책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