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 - 박해선 詩를 담은 에세이
박해선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년여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쓴 일기와 편지, 시와 단상을 모은 글이 책이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리움과 동거동락한 흔적이 진하게 배인 책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은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유년의 추억과 담장 아래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까지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다. "아침은 아침대로 반갑고 저녁은 저녁대로 그립다. 눈 뜨고 감으면 스러지는 일상. 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가슴에 그리움이 이는 것은 또한 얼마나 축복이냐. 아름답고 황홀하지 아니하냐."(p18)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축복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리움을 없애주는 진통제를 먹지 않는다.

 

영화감독이 꿈이었으나 어찌어찌해서 차선책으로 방송국 PD가 된 [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의 저자 박해선은 시인이기도 하다. PD와 시인,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난 뒤엔 기막힌 조합이구나, 했지만. 책날개는 "그의 순수한 감성은 PD가 된 후 빼어난 감각으로 발휘되었다." 라고 저자를 소개한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문세 쇼>, <열린음악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이 소개글을 뒷받침해준다. 내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라 시인답다고 생각했다.

 

그가 시인이 된 데에는 고향 마을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어린 시절 그가 자란 여주의 밤하늘에는 주먹보다 큰 별들이 마당으로 쏟아질 듯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고 한다. 통나무다리를 건너서 다닌 학교, 누나의 손을 꼭 잡고 간 읍내 영화관, 역무원 몰래 기차에 무임승차 한 역, 자전거 안장에 앉지도 못하는 키로 10리를 내달렸던 시골길, 가정방문 오시는 담임 선생님과 걸었던 강변길, 소꼴을 먹이던 대룡산 꼭대기. 이런 풍경들이 감성과 시상을 풍요롭게 채워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시골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추억도 많고, 감성도 풍부하고, 무용담도 많다. 요즘 시인이 없다고 하는 이유도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문정희는 "그의 시편들은 문학적인 기교나 수사적 장치 없이도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다." 라고 추천사에서 밝힌다.
 

소박한 듯 차분한 필치에 아름다움과 따스함이 스며 있어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그가 그려낸 그리움은 아프지 않고 아름다워 누군가를 그리게 만든다. 시련을 행복의 변주로 읽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그의 행복관을 따라 나도 욕심과 불만을 조금 덜어내야겠다.  한 장 한 장, 한 편 한 편이 모두 좋았지만,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연상되는 4장  스토리 "갈 수 없는 날들"은 고향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어 특히 좋았다. 많은 시편 중 책의  제목을 따온 시 '안부'를 몇 번 읽었더니 어느새 외우고 말았다.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 시는 금세 외웠다.

 

-안부-

 

돌아보지 마라

눈물 난다

세상 그리움에게 더 이상 안부를 묻지 마라

네 뒷모습 보고 있을 그대에게

네 눈빛 다시 보이지 마라

이제 그리움들은 다 잘 있다

너 없이 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