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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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두산 등척기]는 민세 안재홍 선생이 백두산에 오른 16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한문투의 글을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책이다. 평소 정민 교수님의 책을 즐겨 읽는 터라 기대가 컸다. 구문을 현대어로 번역한 정민 교수님의 [꽃밭 속의 생각]를 재미있게 읽어서 더 기대가 컸다. 게다가 백두산의 장엄한 풍경과 각종 동식물의 생태와 전설을 담은 기행기라는 점이 기대를 부츠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이다. 아니, 기대를 충족시켜주고도 남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책을 읽기 전에는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백두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백두산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해온 백두산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고산지대여서 조류가 드물고 꽃이 많아서 덩달아 나비가 많은 백두산.  봄이 늦고 여름이 선걸음으로 물러가는 백두산의 여름은 고작 50일이다.  5월부터 9월 중순까지 길고 지루한 우리네 여름과 많이 다르다.  늦게 든 봄이 그대로 여름이 되고, 가을이 바삐오는 백두산에 언젠가 오르리라 생각해본다. 희귀식물이 많아 식물학자들이 침을 흘리는 백두산에 오르면 고산식물이 무진장이란다. 문득 지난 봄에 우리 집에 다녀간 여행객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 뒤에 있는 산은 아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이다. 사람이 발길이 뜸한 곳이라 희귀식물이나 고산식물, 그리고 산나물과 약초가 지천이다. 아침 일찍 산에 오른 일행은 저녁 무렵에서야 내려왔는데 각자 배낭 가득 산나물을 뜯어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뿌듯하고 보람찬 산행은 처음이었어요. 이런 나물은 도시에서 돈 주고도 못사는데 운동도 하며 귀한 나물도 뜯어서 너무 좋아요." 도시의 산에는 등산객들 때문에 나물이 자랄 틈이 없는데 이 산에는 산나물이 많은데다 도심의 산보다 더 연하고 크다고 귀뜸해주었다.

 

안재홍 선생과 동행한 이들도 우리 집에 다녀간 여행객과 비슷한 행복을 느낀 것 같다. 신무치에서 수많은 나비를 채집한 김병하 씨,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물을 채집한 최여구 씨가 그렇다. 눈으로 쭉 둘러보고 황급히 떠나는 현대인들의 바쁜 여행에 비해 옛사람들의 여행은 여유롭고 낭만적이다. 게다가 학구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그들이 식물학자, 곤충학자여서 그랬겠지만, 어디를 가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여행과 분명 차이가 있다.

 

책은 장엄한 백두산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간결한 문체는 정민 교수님의 '긴 글은 짧게 끊는다.' 번역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원전의 맛을 그대로 살린 정민 교수님의 풀어 읽기로 인해 백두산의 숨결과 흔적, 그리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의 의미를 짚어주고 백두산에 대한 관심과 민족의식을 점검하게 해주는 책이어서 학생들에게 특별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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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2-0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2007년 8월에 백두산을 종주하고 왔는데 제 블로그에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링크로 걸어뒀답니다. 혹시 백두산을 가시게 된다면 제가 따라 갔던 '자유인산악회'를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