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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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인생의 단면을 독자적 관점으로 날카롭게 파악하여 간결하게 표현해 주제가 잘 드러나는 게 특징이다. 최근 창비에서 근현대 외국 단편소설을 엄선하여 국가별로 모아 엮은 '창비세계문학'이 출간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짧은 분량 안에 간결한 주제를 압축해놓은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독일편 [어느 사랑의 실험]을 읽으며 독일문학의 특성과 독일 단편소설의 독특함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사랑의 실험]에는 독일문학사에서 단편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이백년이 넘는 시기를 대상으로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엄선하여 가려뽑은 독일 단편소설 17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은 "해당 시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현실인식을 독창적인 개성으로 소화해낸 문제작을 발굴하여 단편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고자 했다."(5쪽) 라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독일문학하면 으례 헤르만 헤세나 괴테, 카프카, 프리드리히 니체를 떠올리게 된다. 혹시 이들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펼쳤는데 첫편에서 괴테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으로는, 모자라고 순진한 열일곱 살 사춘기 소년의 방황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성장소설  <짝짓기>가 수록되어 있고,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으로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가 실려 있다. 다만  프리드리히 니체의 작품이 없어 다소 아쉬웠으나 수록작 17편 중 11편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이어서 한편 한편이 새로게 다가왔다.

 

괴테의 <정직한 법관>은 그의 소설 [독일 피난민들의 담화]에 들어 있는 액자소설이다. 많은 부를 축적한 쉰살의 남자가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을 누리고자 16세의 어린 신부와 결혼하고, 1년 뒤 어린 아내를 홀려 남겨두고 무역여행을 떠난다. 본능의 욕구와 이성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아내가 정직한 법관의 지혜로운 처방으로 인해 결국 본능의 충동을 극복하고 이성적 자각에 도달하는 내용인데 괴테의 뛰어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뛰어난 심리묘사 덕분에 아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조바심을 내며 읽었다. 이미 제목에서 안심해도 된다는 단서를 제공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알렉산더 클루게의 [어느 사랑의 실험]이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포로들 몰래 집단 방사선 불임시술이 행해졌다. 그렇게 시술된 불임상태가 지속되는지 의심스러운 나치는 남녀 포로를 신방처럼 꾸며놓은 방에 가둬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험한 내용이다. 나치의 갖가지 생체실험을 전후 세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하는 주제에 걸맞게 다큐멘트와 픽션의 절묘한 중간 형식을 취한 소설이다.

 

독일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감정, 사회상을 보여주는 17편의 작품들은 어느 것하나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우려했던 것보다 책이 매끄럽고 쉽게 읽히는 것은 번역에 들어간 노력과 수고가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책 말미에 각 작품마다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는 방대하고 친절한 해설을 실어놓아서 작품을 깊고 넓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욕심 같아선 '창비세계문학' 전집을 당장 구매하고 싶지만 신학기라 그럴 수 없어서 천천히 한 권씩 모두 만나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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