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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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헌종 10년에 83세 나이로 소과에 급제한 중인(中人) 여항시인(閭巷詩人) 조수삼은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무리를 향해 "구경꾼들아, 몇 살인가를 묻지 마소. 육십 년 전에 스물셋이었다네"라는, 신분제 사회를 한탄하는 시를 남겼다. 조수삼의 고뇌가 묻어나는 시이다. 조수삼은 당시 추사 김정희와 교유하고 조만영 조인영 등 풍양조씨 세도가의 후원을 받았으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회현실을 시로 읊었는데 김정희는 조수삼의 시를 두보의 시풍에 근접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양반과 평민의 중간 신분계급인 조수삼의 시는 당시 조선의 신분사회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사(士)-농(農)-공(工)-상(商)' 순으로 나뉜다. 문치주의 조선에서 선비는 조선을 이끌어가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층이었다. 양반을 위한, 양반에 의한, 양반의 나라 조선 사회에서 중인 출신의 조수삼을 보고 수군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에는 미천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중 중종 때 인물인 반석평은 원래 종이었으나 과거에 급제했다. 반석평은 천얼 출신이라 탄핵도 받았지만 당대 조광조 김식 등 기묘사림과 교유하며 청렴겸공으로 형조판서까지 지냈다. 조수삼과 반석평이 신분상승을 했다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무시로 인해 얼마나 많이 고뇌하고 번민했을까?

 

[제중원 박서양]은 미천한 백정 신분으로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된 실존인물 박서양의 삶에 작가적 상상력이 동원된 역사팩션 소설이다. 가장 낮은 신분인 백정 출신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로 신분상승을 꾀한 박서양의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설스럽다. 그러나 작가는 박서양의 성공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성공 이후 삶을 사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 집필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백정이 의사가 되는 성공스토리가 아닌, 의사가 되어 우리 역사 중 가장 험난했다 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382쪽)라고 집필의도를 말한다.

 

박서양은 1885년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 의해 제중원 앞에 버려진다. 박서양은 제중원에서 의사 알렌을 만나 의학을 배우고 어깨 너머로 영어를 익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백정의 아들이며 백정일 뿐이다. 제중원 의학당 생도까지 되었지만 박서양의 생활은 괴롭기만 하다. 같이 공부하기를 꺼리는  의학당 생도들의 따돌림과 폭력, 백정의 아들로 보는 시선들,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를 괴롭힌다. 열여섯 명의 제중원 입학생도들 중 박서양이 유일한 졸업자이지만 그에 대한 편견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고종의 명을 받고 미국으로 떠나는 알렌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지만 중도에 초죽음이 되어 붙잡혀 온다. 박서양은 삶의 의욕을 잃지만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진정한 의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박서양에겐 '최초'라는 수식어가 참 많이 붙는다. 조선 최초의 양의사, 조선 최초의 백정 출신 의사,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 의학교 졸업생, 조선 최초의 백정 출신 교사. 그가 백정이 아니었으면 '최초'라는 수식어가 이렇게 많이 따라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최초라는 수식어 뒤에 남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흘려야했던 눈물과 좌절, 비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당시 소용돌이쳤던 역사 만큼이나 소용돌이친 박서양 인생은 의사가 된 이후 더욱 빛을 발한다. 제자를 육성하고 의술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백정은 백정일뿐 사람이 아니라는 세상의 편견을 묵묵히 견디며, 때론 싸우며 치열하게 살다간 박서양을 알게 되어 뿌듯하다. 자신을 옥죄는 신분의 굴레와 모진 멸시에도  당당하게 승리한 박서양에게서 좌절할 이유가 아무리 많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이유 단 하나만 있으면 그것을 붙들어야 할 것을 배웠다. 더불어 자신의 성공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해야 하는지도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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