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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일반적으로 클래식하면 어렵고, 지루하고, 고상한 음악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된다. 최근에 클래식을 쉽게 설명해놓은 책을 몇 권 읽어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버리긴 했지만 클래식을 즐기는 수준은 못 된다.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가요와 달리 따로 수고를 해야지만 들리는 음악이라서 그런 것 같다. 작곡가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곡에 사용된 악기와 감상법을 익혀야 하는 등 기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분야이다 보니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클래식과 가까워질 기회도 거의 없다시피한 환경도 클래식에 다가서지 못하게 한 요인이라면 요인이다.
[악마의 바이올린]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한 작품이다. 조셉 젤리네크의 전작 [10번 교향곡]에 대한 독서가들의 뜨거운 반응을 알고 있던 터라 기대를 한아름 안고 펼쳤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다. 조셉 젤리네크가 전작에서 베토벤을 소재로 했다면 이번 작품은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의 저주 받은 바이올린을 소재로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작가는 책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풍부하고 깊은 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줄거리 속에 자연스레 녹여낸 작가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박학다식해서 독자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클래식을 배울 수 있다.
아네 라라사발은 마드리드 국립 오디토리엄의 심포니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B단조'와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난이한 곡으로 정평이 나 있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24번'을 연주한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의 가슴에는 악마라는 의미의 ‘Iblis’라는 아랍어가 피로 쓰여져 있고, 그녀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없어졌다. 악마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그 바이올린은 18세기 음악가 파가니니가 남긴 스트라디바리우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녀가 죽은 날은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준 할아버지가 사망한 날과 같은 날이다. 할어버지 이전에 바이올린을 소유했던 ' 지네트 느뵈'는 의문사를 당하고 역시 바이올린이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아들과 함께 아네 라라사발의 연주를 듣기 위해 국립 오디토리엄을 찾은 페르도모 경위는 이 사건을 맡아 수사에 착수한다. 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소유한 뛰어난 연주가들은 모두 죽는 것일까? 수사가 진행되면 서 '악마'의 그림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파가니니에서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느뵈와 아네 라라사발까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고의 연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 수 있을까?
파가니니가 남긴 위대한 바이올린의 행방을 찾고 살인자를 찾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이야기는 흥미진진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의문의 악보와 현장에서 풍겼던 향수 냄새를 따라 추적하는 페르도모의 빠른 걸음처럼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찾는 것보다 음악사의 숨은 이야기와 클래식에 관한 작가의 지적인 이야기에 더 끌렸던 거다. 클래식에 관한 지식과 소설을 읽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는 즉, 2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내친김에 [10번 교향곡]도 읽으려고 한다. 부록으로 미니 CD가 들어 있어 클래식을 들으며 이 책을 읽으면 재미는 배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