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는 2인칭 소설로, 주인공인 ‘당신’은 황혼기에 접어든 주부이자 작가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주부이자 작가인  '당신'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이 3년 가까이 수많은 병원들을 순례하며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제목만 보고 나는 이 책을 시한부 인생을 다룬 소설쯤으로 오해할뻔 했다. 6개월 안에 세상을 떠나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을 뵐 수 없는 비련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과 정반대로 이 책은 익살스럽고 풍부한 유머로 프랑스 의료실태를  풍자하고 있다.

 

어느 날 졸지에 사고를 당한 '당신'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며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의사 선생님들, 만나기 어려운 의사 선생님들 때문에 서서히 지쳐간다. 그러나 '당신'은 짜증나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당신'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은 존경하는 어느 분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울어도 보았고 웃어도 보았으나 웃는 게 더 낫더라.' 어차피 안 좋은 일에 닥쳤다면, 슬프게 맞지 말고 웃으며 대하라. 그러면 결국 그 웃음으로 인해 좋게 되더라는 경험적인 말씀이다.

 

'당신'은 이른 새벽에 서재로 사용하는 건물의 문을 열고 깜깜함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순간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넓은 서재를 축구공처럼 데굴데굴 구르다가 탁자 다리에 걸려 멈춘다. 다행히도 아무런 통증이 없다. 이건 기적이야! 그러나 이내 여기저기 쿡쿡 쑤시는 것도 같고, 온몸이 얼얼하고, 뇌가 솜사탕처럼 느껴지고, 오른쪽 무릎은 몹시 아프다. 결국 세브르 종합 병원의 응급실로 가서 무.조.건 15분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응급실이 텅 비어 있는데도 15분을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응급실의 원칙이다. 진료 결과 단순한 타박상이라며 의사는 약을 처방해준다. 그러나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당신'은 죽을 만큼 아프다. 오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병원순례는 길고 지루하고 힘든 상황의 반복이나 '당신'은 특유의 긍정과 유머로 맞선다. 아픈 상황에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상황에서 유머를 구사하고 웃을 수 있는 '당신'이 존경스럽다. 1년 전 예약하고 6개월 간 기다리는 건 프랑스에서 기본이다. 게다가 유명한 의사 선생님은 소개 없이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그렇게 기다렸건만 얼굴만 보고 처방을 해주는 무성의한 의사 선생님은 뭐고, 오진하는 의사 선생님은 뭐람! 여기가 선진국 프랑스 맞나? 우리라고 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보단 나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 거긴 거 같다. 그치만 어려운 상황을 잘 참아주고 지혜롭게 대처한 '당신'은 멋진 할머니이고, 훌륭한 작가이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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