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 시로 옮기고 싶은 순간을 놓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김미옥.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숲에서 살다보니 가끔 시로 옮기고 싶은 순간과 맞닥뜨린다. 겨울 밤에 유난히 빛나는 별빛과 사르르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내리는 함박눈, 사방 산에 피여오르는 산안개구름과 방안 가득 고요히 내려앉은 달빛은 시로 탄생하기에 훌륭한 소재들이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움에 도취될 줄은 알아도 시로 옮길 줄은 모른다. 나에게 시는 정복하기 어려운 높은 산과 같다. 읽고 소화하기에도 벅찬데 어찌 그것을 시로 옮기겠는가.

 

내가 옛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시 때문이다. 글깨나 읽은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시인이었다. 글자수를 맞춘 문장에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은유로 멋진 시 한 편을 뚝딱 만들어 내는 건 선비들에게 일도 아니었다.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즉흥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 은유시로 임금에게 간언하는 장면은 감격, 그 이상이다.

 

[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은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 쉬운 말로 풀어쓴 시 입문서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로저 하우스덴은 19명의 시인과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35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는 시인의 삶을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시의 탄생 배경과 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저자의 설명으로 인해 어려웠던 시가 쉬워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의미가 깨달아진다.

 

[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담고 있는 시 중 파블로 네루타가 칠레의 가수 마틸테 우르타이를 위해 쓴 <사랑의 소네트 89>가 인상적이다. 네루타는 외교관이자 정치적 이상주의자, 문인이자 사상가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늘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마틸테 우르타이는 네루타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의 시 <사랑의 소네트 89>를 저자의 설명을 들은 뒤 다시 한번 더 읽으니 시인의 포근한 마음이 내게도 전달되어왔다. 이 시를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준다면,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도록 낭만적인 시 중 하나라는 이 소네트를 나중에 따로 노트에 적어두고 곱씹어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는 소소한 날들의 자잘한 기록과 사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머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사소한 나날의 흐름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보고, 자신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어 보라고 한다. 그러면 시를 옮기고 싶은 순간이 그곳에서 나타난다고. 평범한 일상은 아름다운 시로 탄생되기에 충분하고, 시에서 영감을 얻어 삶을 변화시키라는 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시에서 영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시를 자주 접해야 하니 이 책을 곁에 두고 자주 들춰보며 시와 친해져야 겠다. 가끔은 소리내어 읽어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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