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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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출간한 '역사의아침'에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에 역사의아침에서 출간한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내가 수년 전부터 애타게 찾아 헤맨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의 개정판이다. 대형서점과 헌책방, 인터넷서점을 돌며 이 책을 찾았으나 절판되어 구할 길이 없었다. 혹시 개정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안고 인터넷서점의 신간을 기웃거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이 있으면 빌려서라도 읽고 싶었으나 도서관도 없는 강원도 오지 산골에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자리를 빌어 역사의아침 출판사에게 조심스레 묻고 싶은 게 있다. 이덕일 작가의 절판된 또 다른 책, 김종서 평전인 [거칠것이 없어라]를 개정판으로 출간할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다.이 두 권의 책은 내가 수년간 구하기 위해 수소문한 이덕일 작가의 책이다. 여하튼 그토록 찾던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 무척 고맙고 반가워 단숨에, 그러나 한 자라도 놓칠까 꼼꼼하게 읽었다.

 

이회영, 이덕일 작가가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이름이다. 우리에게 여운형, 홍명희, 김규식 같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귀에 익지만 이회영은 낯설다. 그가 독립운동가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역사학을 전공한 이들마저 모르는 경우도 보았다. 독립을 위해 이회영이 한 위대한 일과 그의 빛나는 생애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를 모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이회영을 이렇게 소개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회영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이시영의 형이다. 이시영은 우당 이회영의 여섯 형제 중에 1945년 일제의 패망 때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고문사하거나 아사했다. 이회영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형제들에게 전 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일제와 싸우자고 하며 "이것이 대한 민족된 신분이요, 또 왜적과 혈투하시던 백사白沙(이항복) 공의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형님들과 아우님들은 나의 뜻을 따라주시기를 바라노라"고 설득했다. 삼한갑족三韓甲族(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으로 불린 명문대가 출신인 이회영 일가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떠났다. 이회영 일가가 마련한 자금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 이상이라고 하니 대단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대한제국이 망하는 데 큰 공을 세운 76명의 조선인들이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경제생활을 보장받은 것과 이회영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국 독립에 전 재산을 바친 것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저자 이덕일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선  지배층이 있었던 반면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던진 지배층이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P335)고 말한다. 여섯 형제의 전 재산과 목숨을 바친 이회영 일가와 젊은 동지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일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의 망명과 망명 후 활동,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의 교류와 독립운동을 펼친 모습,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혁명적인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아나키스트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귀족 출신 이회영이 아나키스트가 된 것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아나키즘 이론을 실천해나가면서도 공산주의처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빠지지 않고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극심한 가난으로 끼니를 굶는 가족들의 고통과 칠순의 노구에 여순감옥에서 고문사당한 파란만장한 이회영의 삶과 젊은 동지들을 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회영이 중국으로 망명한 목적은 항일무장투쟁과 교육입국을 위해서였다. 그는 항일무장투쟁으로 나라를 되찾고, 되찾은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한 교육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이회영이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실제로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 벌어진 수많은 항일무장투쟁의 현장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다.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것이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개혁가임이 분명하다.


 

이회영, 그는1910년 망명 이후 만 22년의 장구한 세월을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았다. 숱한 고초를 겪으며, 극도의 궁핍함을 견디며,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살아온 삶이었다. 1932년 11월 17일 이회영은 고문사하고 말았다. 그는 고문받는 동안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항거였고, 젊은 동지들을 지키기 위한 칠순 노인의 외로운 투쟁이었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이렇듯 이회영은 여순감옥에서 인간해방, 민족해방의 제단에 자신의 몸을 바쳤다. 삼한갑족의 후예로 태어나 전 재산과 생애, 목숨까지 인간해방, 민족해방에 바친 것이다. 실로 위대한 죽음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를 알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프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이름이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우당 이회영을 독립운동가로, 애국지사로, 민족의 영웅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읽으며 역시 이덕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덕일은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이 시대 최고의 대중역사서 집필가이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한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동지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존경할 인물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 진정한 애국자를 찾기 힘들다는 시대에 이회영이야말로 존경할만한 인물이며,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싶다. 이회영과 젊은 동지들을 만나는 내내 그들의 신산한 삶에 가슴이 저려왔고 너무 자랑스러워 가슴 벅찼다. 자랑스럽고 위대한 민족의 영웅을 다룬 이 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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