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에 고하옵니다 - 류연상 자전 에세이 아버님 전에 고하옵니다
류연상 지음 / 한솜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정채봉은 얼굴도 익히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다 오늘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어머니 곁으로 갔다. 생전에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의 글을 절절히 토해낸  그의 글을 나는 많이 좋아한다. 그를 생각하면 저절로 작가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고향 바닷가 마을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가 그리워했던 것들이다. 이젠 내가 그것들과 함께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며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픈 사연의 주인공은 이 책의 작가 류연상이다.

 

두 살 되는 해, 저자 류연상의 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사할린 노무자로 끌려갔다가 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동토의 땅에 갇힌다. 어머니는 열네 살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저자를 낳고 스무 살에 혼자가 되었다. 할머니는 홑바지만 입고 그 추운 사할린으로 끌려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일흔일곱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얼음을 깨고 한겨울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한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저자는 '아비 없는 자식'이 운명인 줄 알고,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 아버지도 오실 거다!"며 자랐다고 한다. 이렇듯 온가족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며 애타게 아버지를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원한의 땅 사할린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으셨다.

 

[아버님 전에 고하옵니다]는 가장을 잃은 한 가족이 겪은 아픔과 가난, 그리고 그리움을 담은 책이다. "아버지 없이 살아온 서러운 넋두리들이지만 아버님 돌아오시면 들려 드리려고 서리서리 모아둔" 저자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몇 번이나 붉어졌는지 모른다. 이제와 암울한 시대를 원망하고 징병에 끌려간 사람들의 귀환에 뒷전이었던 정부를 원망해 무엇하랴먀는 그로 인해 고달픈 생활을 한 작가를 보니 그를 대신해 세상을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처참하고 고달픈 생활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대한 저자의 열망은 내게 한줄기 빛을 선사한다. 학교 사환으로 일하며 주경야독하고 고학으로 힘겹게 공부하던 생활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만 간다. 그러다 아버지가 된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를 찾으면 모시고 오려고 머나먼 동토 사할린으로 떠난다.

 

사할린에서 굵은비를 맞으며 아버지를 찾아 발버둥 치는 가슴 아픈 장면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주 앉아서 고국의 배를 기다리며 괴로움에 몸서리쳤다는 바위에 넋놓고 앉은 어머니와 아들의 괴로움이 이입되어 나를 한동안 괴롭혔다. 너무 슬퍼 가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고, 너무 아파 읽기가 괴로울 정도다. 날마다 '망향의 언덕'에 올라 고국에서 태우러 올 배를 눈을 비비며 기다렸다는 아버지, 목 놓아 불러 봐도 대답없는 그 이름 석자 아버지에게 류연상은 살아 생전 미처 전해 드리지 못한 숱한 이야기를 편지에 담았다. 아들의 애절한 편지가 부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아버지, 평생 수절한 어머니, 할머니, 고향 싸리재, 그리고 작가 류연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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