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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20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월 26일 의거일을 전후하여 많은 책과 기념행사와 뮤지컬 <영웅>과 같은 공연들이 있었다. 안중근의 의거는 그의 가문 후예들에게 통일과 독립운동에 매진케 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가문에 커다란 시련과 탄압을 주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안중근의 직계후손은 미국에, 동생 안정근의 직계는 남한과 미국에, 안공근의 직계는 북한과 파나마에 흩어지게 했다. 일간지에선 남과북, 해외로 흩어진 그의 후손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안중근의 유해 발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보도한다. 그의 일족이 유민처럼 떠돈 지 100년째라면 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나서서 그들을 만나게 해줘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는 안중근의 히로부미 저격 뒤에 숨은 비통한 역사를 알려준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몰랐을 것이다. 나처럼 이 처절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할 것 같다. 책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 수치스런 역사를 왜 들춰내는 것일까? 책은 하얼빈 거사 30년 후, 안중근의 아들 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한 비극적인 사건을 공개한다.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도 준생을 나무라지 못할 것이다.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나라를 팔고 아버지를 버린 변절자라고, 친일파라고 함부로 손가락질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를 변절자로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의 아들이었던 안준생이 대체 왜 이런 가슴 아픈 선택을 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일본에서 총리직을 4번이나 역임했던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가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과 협박은 인내하기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다. 안중근의 가문이 세계로 흩어진 것은 일제의 탄압과 협박, 회유 때문이다. 안중근의 큰아들, 즉 준생의 형은 7살 때 독살당했고 준생은 어머니와 함께 상해와 러시아로 옮겨다니며 숨어 살고 굶주리며 살았다. 아버지 얼굴도 못본 준생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영웅 아버지와 비교되며 늘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도 싫었고, 처절하리만치 가난하게 사는 것도 싫었고, 숨어서 사는 것도, 안준생이 아니라 안중근의 아들로 사는 것도 싫었다. 가족을 내버려두도 떠난 아버지에게 왜 아들이 책임감을 느끼며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으며, 따돌림당하고 매맞고 이용당할 때마다 그의 가슴에 얼마나 숱한 원망이 지나갔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하다. "왜 나는 안준생으로 살 수 없었죠? 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져야 했죠?"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는 역사학자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와 조마리아(안중근의 母)의 후손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원작을 쓰고 이들의 제자인 김성민 작가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팩션형식을 취한 책이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안중근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었다는 것, 안중근은 한국만의 영웅이 아니라 동양 전체의 영웅이었다는 것, 안준생의 친일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에 있다. 안중근이 왜 의사가 아니라 장군인지, 안중근이 한국을 넘은 동양의 영웅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내 서평은 준생의 비극적 역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책을 꼭 구입하기 바란다. 읽어 보면 우리가 너무 좁은 틀 안에 안중근을 가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얇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와 역사 이면에 가려진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준생을 비롯한 안중근의 가문이 받은 피해와 트라우마는 100년 동안 이어지며 더 깊은 망각지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과 안중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발견하였다. 부끄럽다. 준생의 사죄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우리의 무관심과 망각이 몹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