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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에 능숙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사랑에 서툰만큼 이별에도 서툴다. 아니, 사랑보다 이별에 더 서툴다. 이별은 준비하고 연습한다고, 경험한다고 능숙하게 치뤄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별은 대부분 돌발적인 것이어서 커다란 충격을 준다. 사랑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은 자신의 존재 전체를 잃는 것과 같은 강도의 충격이다. 내게도 이런 죽음과 같은시간이 두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데 당시엔 인생이 무너질 정도의 깊은 슬픔과 절망에 잠기었다. 첫번째 이별 뒤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 있는 마비 증상을 보였고, 두번째에는 떠난 사람을 대신할 대체 대상을 찾아나섰다. 처음에 비해 두번째 보인 반응은 진일보했다고 우스갯 말로 자평해보지만 상실의 충격은 두 번 다 같은 강도였다는 것, 내가 보인 반응은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집에만 틀어박혀서 자기 안으로 숨어 들거나 상대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며 이별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유 없이 분노를 표출하거나, 감정을 꼭꼭 숨기거나, 자학, 자책하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잃은 사람을 대신할 사물이나 사람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에 다양하게 반응하지만 제대로 반응할 줄은 모른다.
[좋은 이별]은 이별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람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후 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치료 에세이다. 이 책은 사람의 죽음을 아파하는 '애도'와 소중한 대상을 잃은 '상실'을 주제로 저자 김형경의 심리 치료 경험을 토대로 '잘 이별하는 법'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개인적 사회적 병리의 모든 원인은 사랑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후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성인이 된 후의 심리적 문제들은 성장기의 상실과 애도 불이행의 문제에 있다는 것이다.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으며 건강하고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보내는 슬픔을 다스리는 '애도'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떠나보내는 게 잘 떠나보내는 것일까?
[좋은 이별]은 목 놓아 울거나 슬픈 노래를 부르거나 글, 그림, 춤 등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들은 용서하라고, 일부러라도 즐거운 일거리를 만들어 무슨 일이든 하라고 권한다. 이런 행동은 떠나간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세상에 통용되는 지침들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더 병들게 한다고 말하는 저자가 내린 진정한 애도란 이렇다. 상대와의 추억과 애도 과정에서 겪은 나의 고통과 슬픔을 내 일부로 간직해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그리워 하고, 죄의식을 버리고, 1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대체 대상이 필요하다면 건강하고 유익한 대체 대상을 갖으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저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즐겨했던 낚시를 따라 하면서 아버지의 삶을 더 이해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내면화할 수 있었고, 잘 보내드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이별이라는 시련은 나를 한층 강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뿐만 아니라 애도 작업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준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 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애도 기간에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