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택시
김창환 지음 / 자연과인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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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하루를 온전히 쉬는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저자는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좁은 택시 안에서 다리도 제대로 못뻗고 허리도 제대로 못 피면서 종일 운전을 하면 쉬는 날에는 곯아떨어질만도 하련만 부지런도 하다. 김창환 저자는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와 어릴적 이야기, 꿈을 좇다가 실패한 이야기, 그리운 고향 이야기와 끈끈한 가족 이야기를 그러모아 한 권에 담았다. 읽으며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신림, 정선, 도계, 원주가 자주 등장해 마치 이웃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았다.

 

[바다로 가는 택시]는 통영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좁은 택시 안에서 만난 손님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혼하기 전에 사별한 부인의 고향을 찾아온 말쑥한 신사, 가슴 설레게 하는 젊은 여자 손님을 태우고 밤길 고속도로를 저속으로 달린 이야기,  택시 한 대를 사주겠다고 제안하는 나이 많은 작부, 쌀을 7포대나 한꺼번에 들여놓은 가난한 부부의 사연 등을 솔직담백하게 실었다. 너무 솔직하다 싶을 정도여서 관능적으로 보인다. 관능적 묘사에 충실한 글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관능적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이란 하여간! 그러나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감동'과 '희망'이라 하겠다.

 

어릴 적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본 첫번째 여자인 김숙희 선생님을 그리는 마음과 신체검사 날 눈물 젖은 빵을 나누어 먹은 옥분이에 대한 유년의 추억은 산골 아이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추억이다. 젊은 시절에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으며 시골 마을에 대한 동경을 품었었는데 [바다로 가는 택시]를 읽는 도중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났다. 뒤늦게라도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이런 산골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감성과 인성에 영향을 주는 산골생활을 아이들도 먼훗날 그리워 하겠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저자처럼 말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저자는 강원도 도계에서 태어나 최고 학부까지 나온 뒤 대기업 연구실에서 근무한 엘리트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는 엘리트가 아니라 꿈을 현실에 옮길 줄 아는 용기 있는 엘리트였다. 대기업에서 나와 정선에서 10만평의 땅에 감자농사를 지으며 농산물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게 되자 전국을 돌면서  돼지똥거름장사를 했다. 그것 역시 여의치 않게 되자 삼천포에서 도토리묵과 두부를 만들어 파는 도토리묵집 아저씨로 변신했다가 6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통영에서 택시기사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프로필은 망해온 기록이기도 하지만 꿈을 꿔온 기록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꾸며 노력한 저자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팔순이 넘은 노모와 무르팍 쑥 삐져나온 추리닝의 아내와 중학교 1학년 딸아이, 그리고 누렁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통영 미륵도 둔전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가기 까지의 이야기는 용기 있는 자만이, 꿈을 좇는 자만이 연주할 수 있는 희망의 변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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