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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나라에서
히샴 마타르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남자들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을 보고 남자들이 천국인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여자들의 고통과 좌절에 관한 책이겠지 예상했다. 생각이 아주 빗나간 건 아니지만 내 예상대로 여자의 시선으로 남자들의 비인간적인 권위 의식과 폭력을 그린 책은 아니다. [남자들의 나라에서]는 아홉 살짜리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 곧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리비아 남자들과 리비아의 정치 폭력에 된서리를 맞은 슬픈 가족사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나라로 이집트와 알제리,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있으나 카다피가 국가원수인 나라이다. 대통령과 국가원수가 각각 다른 참 특이한 나라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그 정도로 카다피의 권력이 막강하다는 반증이다. 카다피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정부 수반이다. 이러한 사실은 카다피 정권 당시 정치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얼마나 인권이 자유롭지 못했는지, 그의 독재 정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남자들의 나라에서]는 1970년대 독재 정치를 배경으로 스물네 살 청년 술레이만이 아홉 살 때의 자기 모습을 회상하는 소설이다. 술레이만의 어머니는 남자아이와 데이트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을 했다. 결혼 사유가 고작 데이트라니. 그러나 남자들의 나라, 남자들을 위한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술레이만의 어머니는 원치 않는 아이도 낳아야 했고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데 모두 남자들에 의해서, 남자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항상 집을 비우는 남편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외로움과 좌절을 술레이만은 잘 알고 있다. 술레이만은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 그녀는 혼자였고, 나는 그녀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잠시라도 눈길을 돌리고 방심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방심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면, 재앙이 닥치지 않고 그녀가 제자리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절박한 이야기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로 인한 나의 경계심과 당시에는 그녀의 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우리 두 사람을 친밀감 속으로 묶어줬다."
술레이만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로서 느끼는 고독과 좌절을 잊기 위해 술에 기대는 나약하고 아프고 슬픈, 그래서 자신이 보호해줘야 하는 미움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술레이만의 아버지는 상류층의 부유한 사업가로 반정부 활동을 하는 혁명가이다. 부르주아인데다가 자유를 갈구하며 반정부 활동을 하니 집 밖에는 아버지를 잡으려는 비밀 경찰이 대기 중이었다. 집 안에서는 이웃집 아저씨의 처형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불안한 시국에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아버지를 잡으려는 비밀 경찰들, 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혁명위원회, 결국 모진 고문을 받는 아버지. 일련의 사건에서 술레이만은 독재 정권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하는데, 어머니는 자식만은 불안한 정국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이술레이만을 이집트로 도피시킨다.
작가 히샴 마타르도 카다피 정권 시절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려 아홉 살 때 리비아를 떠나 이집트에 가서 살아야 했다. 아직까지 아버지의 생사를 모르는 작가는 자신의 고통과 상실을 술레이만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작가는 독재 정치 아래서 고통당한 가슴 아픈 가족사를 어둡게만 그리지 않았다. 사랑과 용서라는 감동으로 채색하고, 해피엔딩이라는 아름다움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소설로는 오랫만에 만난 감동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