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산의 오경백편
정조 이산 지음, 김월성 외 옮김, 최근덕 감수 / 느낌이있는책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규장각을 설치해 서얼을 등용하고 탕평책을 실시하여 골고루 관리를 등용하고 조선의 르네상스와 태평성대를 구가한 정조가 직접 쓴 책이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했다. 호학의 군주 정조가 직접 쓴 최초의 책이자 유일한 책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은 도서출판 느낌이있는 책에서 출간한 [ 정조, 이산의 오경백편]이다. 정조는 백성을 계몽하고 풍속을 순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 100편을 오경 (五經)에서 가려내 책으로 엮었다.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예기(禮記)에서 정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뽑아 백성들에게 삶의 지침으로 내놓은 것이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은 유교의 경전으로 사서는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이고, 오경은 시경, 서경, 예경, 역경, 춘추이다. 사서오경을 직접 읽어 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나 학생 시절에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름만 겨우 알고 있었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책이다. 주석을 달았다 하더라도 방대한 양과 한자, 어려운 동양 사상에 지레 겁을 먹고 감히 엄두를 못내다가 재작년에서야 겨우  '논어'만 읽었다. 동양철학 전공자가 아니고는 쉽게 손에 잡히는 책이 아닌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달랐다. 사서오경은 공부하던 선비들의 필독서에 해당되어 선조들은 사서오경을 통해 문사철(文史哲)을 포함해 정치, 경제, 물리, 천문, 지리 등을 섭렵했다. 옛 선비들이 경전을 읽으며 성인이 남긴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지혜와 학문의 깊이를 더한 사서오경 중 오경 100편을 쉬운 말로 옮겼다고 해서 나는 주저없이 [정조, 이산의 오경백편]을 집어들었다.

 

[정조, 이산의 오경백편]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서경'부터 소개한다. 서경은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 때부터 주나라까지 정사에 관한 문서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읽혔다. 요, 순 임금의 일화를 마치 옛날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으며 그 안에 담긴 교훈과 심오함을 놓치지 않으려 천천히 읽었다. 책은 "의례악 해설뿐 아니라 음악, 정치, 학문 등 일상생활의 작은 영역에까지 예의 근본정신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도덕적인 면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예기'를 두번째로 다룬다. 이어서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 '시경'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중국의 춘추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자료인 '춘추좌씨전'을 정리한 뒤 마지막으로 처세상의 지혜와 우주론적 철학이 담긴 '역경'을 다루고 있다.

 

책은 어려운 한자를 현대적인 언어로 리라이팅해 놓아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원전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원전도 함께 싣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부분은 함축적인 시를 다룬 시경이었다. 어떤 시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읽으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심오한 뜻에 바싹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적인 목적뿐 아니라 노론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이 책을 간행한 정조가 안타깝게도 급서하는 바람에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지만, 정조가 꿈꿨던 정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군이자 성군인 정조가 직접 쓴 최초이자 유일한 책을 읽게 되어 뿌듯하고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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