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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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길을 잃은 경험, 그것도 한밤중에 길을 잃은 경험이 있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십년 전, 일주일 일정으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동해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평창, 인제, 영월, 정선, 태백, 삼척 등을 돌며 동해를 훑다가 울진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우린 시간을 단축하려고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넘어가는 지름길로 차를 몰았다. 그 지름길이란 다름 아닌 산을 넘는 거였다. 무슨 산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린 어스름 해질녁에 산에 진입했고 산 입구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1시간이면 산을 넘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나도 산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인가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가로등 불빛 하나도 없어 칡흑 같이 어두운  길을 오직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넘었던 것이다. 비포장 산길은 가도가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깜깜한 밤중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의 비포장 길을 운전하는 남편은 핸들을 조금만 잘못 틀으면 천길만길 낭떨어지로 곤두박질 칠지도 모르니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난 그것보다 차 앞을 가로막고 누군가가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차를 돌릴 수도 없고 돌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간신히 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는 강원도와 경북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었다.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서 4시간 이상을 보내고 드디어 산을 무사히 내려왔다. 그때 자동차 불빛과 인가의 불빛, 표지판 등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산 속에서 길을 후 우리가 세운 여행의 철칙은 이렇다. 지름길도 돌아서!  사족이 길어졌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이름을 알린 최영미 시인이 산문집을 냈다고 한다. 7년만에 펴낸 산문집 제목이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란다. 그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책은 읽어보지 않아서 이 산문집을 선입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그 색깔을 달리 하는데, 1부에서는 유럽과 일본, 미국 등을 여행한 기행 에세이를, 2부에서는 미술, 문학, 영화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담고 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이 미술과 예술 전반에 걸친 사색을 통해 책 전편에 흐르고 있는 독특한 여행서다. 가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어려운 글들도 있으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화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즐겁게 만났다. 미켈란젤로와 고흐에 대한 글을 특히 재밌게 읽엇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만난 최영미 작가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딱부러지는 성격이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중년 여인이며, 순수한 어린 아이 같음과 약간 황당하기도 한 꽤 여러 색깔을 지니고 있다. 모델이 되겠으니 알아서 나를 입히고 분장시키라고 사진작가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자심감과 오바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황당한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독일 여배우 한나 쉬굴라와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과 일본, 미국 등을 여행하며 각국의 미술작품과 건축물과 영화와 음식을 만난 최영미 작가도 처음엔 살짝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다. "아까운 돈과 시간을 들여 내 몸만 고달프면 어쩌지?프랑스에서 스페인에서 나는 한국에서보다 행복할까"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용기를 내어 볼만하다. 그녀처럼 말이다. 각국을 여행하며 예술과 깊게 만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그녀가 부럽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방편으로 여행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부럽다.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은 충만한데 떠나지 못하는 환경으로 둘러싸인 나는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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