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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을 하는 장소와 여행의 의미가 나이 듦에 따라 점점 달라지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유원지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고, 청년 시절에는 무언가를 얻고 돌아올 수 있는 여행지나 낭만적인 여행지를 선호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좋다. 문명과 발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옛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말이다. 그런 곳은 아스라한 유년의 추억과 진한 향수를 불러온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 [소나기]의 소녀가 앉아서 세수했던 징검다리, 초가지붕 위의 박넝쿨, 아궁이에서 나는 관솔타는 냄새와 굴뚝의 하얀 연기, 화전민 마을과 그 산의 푸석한 부엽토, 인적 끊긴 낡은 선착장과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 낯선 나그네를 태우고 강을 건너는 줄배와 사공. 아, 생각만으로도 평화롭고 여유롭다. 시간이 멈춰선 듯한 고즈넉한 풍경들과 소박한 사람들이 있는 여행지는 나를 아주 먼 옛날로 데려다준다.
[내 마음의 여행, 2]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여행지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추억이 있어서 정겨운 곳, 그리움이 있어서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신비로운 곳으로 안내한다. 이 아름다운 영상을 TV로 직접 시청하지 못한 게 아쉽다. 시적인 내레이션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이 풍경들을 접했더라면 향수병에 걸려 몸살을 앓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쉽다. 하지만 책은 아쉬움을 상쇄해준다.
좀더 나이를 먹은 뒤 옮겨앉고 싶은 섬진강 마을에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숲이 있고 황톳길이 있고 섬진강을 따라 굽이쳐 뻗은 길이 있는 마을에서 노년을 보내려는 계획이 섬진강을 보자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봄볕 든 섬진강을 만지고 싶고 노을 번진 수면을 말없이 바라보다 돌아서는 어스름 해질녁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아, 그렇게 살수만 있다면!
책은 그곳에서 살았던 옛사람의 흔적을 만나는 즐거움도 준다. 보길도에서는 고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내다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준 보길도에는 윤선도가 차를 마시며 시를 읊던 바위가 있다. 어부사시사를 지었을지도 모르는 바위에 어린 고산의 숨결이 그립다. 충남 서천의 문헌서원에서는 고려말 삼은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의 지조와 절개를 느낄 수 있다. 이색의 깊은 심중과 굳은 절개만큼이나 산색 깊고 짙은 서천행을 여행 목록에 추가했다.
책이 소개한 여행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여행지. 옛사람의 얼과 소박한 토박이의 정이 묻어나는 곳. 꾸미지 않고 치장하지 않아서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곳, 쓸쓸한 추억에 잠기고 그리움을 부르는 곳, 그래서 휴식 같은 여행을 제공하는 여행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마음으로의 여행을 부추기고 추억으로의 여행을 재촉하는 책에 기대어 가을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