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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 외로움도 안나푸르나에서는 사랑이다
이종국 지음 / 두리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고 한낮에 올려다본 하늘도 높고 파란 것이 가을인가 보다. 거실에 드리운 햇살이 좋아 책을 들고 데크로 나갔다.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등지고 앉았다. 우체부 아저씨도 일찌감치 다녀가서 내 독서를 방해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가끔 윙윙거리며 무서운 기세로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벌을 조심하고 테이블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잠자리만 방해하지 않으면 된다. 따사로운 햇살이 간지르고 산들바람이 간간이 부는 고요한 숲속에서의 야외독서는 산골이 주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오늘 같이 청명한 날 여행 중 만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런 책은 야외에서 읽으면 그 사랑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을 주어 읽는 맛이 일품이다. 바람결에 제멋대로 넘어가는 책장을 붙든 채 앉은자리에서 꼬박 한 권을 다 읽었다. 가슴이 뻐근해지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명치끝이 아려오면 깊은 숨을 내쉬고, 벅차오를 땐 곧게 뻗은 앞산의 낙엽송을 응시하며, 그렇게 읽었다.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은 다큐멘터리 촬영 차 네팔에 간 이종국 저자가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히말라야산맥 중앙에 있는 네팔을 여행하며 만난 순수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과 운명을 바꿀만한 여인 디빠와의 사랑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촬영 차 머물렀던 네팔의 한 가정에서 마주친 디빠는 '찬란한 빛’이라는 그녀의 이름 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답다. 디빠를 사랑한 저자는 이후 몇 차례 더 태국을 방문하고 청혼까지 하게 되지만 순결한 그녀의 영혼은 저자의 청혼을 거절한다.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네팔 여인의 사랑방식과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한국 남자의 서로 다른 사랑관이 어긋난 사랑의 전주곡처럼 흐른다. 남자를 밀어낸 여자의 이유가 날 아프게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한 순결을 지켜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지사를 이유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지나친 욕심은 아닐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네팔 문화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디빠를 향한 그리움과 그녀로 인해 만나게 된 또 다른 다양한 인연들의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여행차 들른 한국 여대생을 못잊고 기다리는 순수 청년과 밑이 다 닳은 슬리퍼를 신고 택시로 25분이 걸리는 거리를 40분 만에 쉬지 않고 뛰어온 너무 사려 깊은 아이와 텔레마케팅을 업으로 하는 기타리스트 등의 인연은 네팔이 준 따뜻한 선물이고 진심어린 사랑이다.
경치과 여행 정보 중심의 다른 여행서들과 달리 사람 냄새, 사랑 내음 불씬 풍기는 이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조금은 특이한 책의 제목을 유츄해 보니, 가난하고 따뜻한 나라 네팔에서 그가 처음 경험하고 새롭게 배운 감정이 '사랑'이고, 그 사랑을 함께 나눈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제목 같다. '내 인생의 보물섬'이라는 네팔에서 보물을 끝내 소유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네팔에서 꿈에 그리던 인생유전의 한 구절을 멋지게 만든 것은 배 아플 정도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