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늘상 술에 취해 눈에 보이는 대로,
그것이 몽둥이든 빗자루든 집어들고 동생과 자신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형수 정윤수와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부유해 보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의 배신으로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는 대학교수 문유정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술에서 깨어나면 매를 드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며 밑바닥을 떠돌던 사형수에게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유정이 제안한다.
실은, 나도 같은 부분이 손상된 동종의 불구자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당신과 내가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고.
그렇게 둘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진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보게된다.
불우하고 가난한 스물일곱 남자와 화려하고 부유한 서른의 여자는 다른듯 하지만 닮아 있다.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도 선택할 수 없었던 남자의 태생이나
열다섯 살에 끔찍한 일을 당하고 성장이 멈춘 여자의 상처는 불가항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도 그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닮아 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는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한다. 
계절이 4번 바뀌면서 그들의 상처는 서서히 치유되고,  힘겹게 용서를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랑을 배운다.
 
구치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은 윤수는 "처음으로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는데
그것이 유정이 본 윤수의 마지막 모습이다.
구치소에서 유정에게 처음으로 존댓말을 들은 윤수는
인간이 뭔지, 사랑이 뭔지,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게 뭔지, 진짜 대화가 뭔지 알게된다.
아침이 제일 두렵다는 윤수는 유정이 오는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두 사람에게 목요일 몇 시간의 만남은  제목 그대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변한다.
두 사람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너무 아름답고 슬퍼 자꾸 눈물이 난다.
 

읽는 내내 눈을 붉게 만든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모른다'는 말로 지나치고 말았을, 몰라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여러 사형수들을 만나는 과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했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인데,

누군가 가짜를걷어내주면 따뜻하고 여린 진짜 모습이 나오는 이들인데 말이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도 죄와 벌을 논할 사람이 있을까?

누군들 죄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몰랐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자.

공지영 작가가 꽤 어려운 숙제를 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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