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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잘 나가는 영화배우이자 감독으로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가 일본 사회와 정치, 문화를 꼬집는 책이라고 해서 기대를 안고 펼쳐들었다. 일본 지식인(?)의 냉철한 눈에 비친 일본의 문제점이란 게 무었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웬걸.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다. 아니, 쓰레기다.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저자의 편협한 사고와 해괴망측한 논리를 수용하기 어렵다. 일본의 원조 독설가라는 저자가 21세기 일본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일본이 불행한 9가지 이유를 열거하고 있는 [위험한 일본학]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외교가 없는 불행>에서 다케시는 일본의 외교에서 가장 미묘한 게 중국문제라고 말하며 교과서 문제는 제발 좀 내버려 달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의 묘한 콤플렉스와 속죄의식 때문에 언제나 중국에 당하기만 하는데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폭주하면 누구도 제어할 수 없으니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중국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아이돌 수출대작전이다. 아이돌을 이용해 문화를 침략해서 중국인은 철저히 바보로 만들자는 것인데, 그 방법이 가관이다. 중국인이 섹스를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노래를 아이돌에게 부르게 하면 중국인들이 섹스를 기피하게 되고 그러면 인구도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참으로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술자리에서나 어울리는 이야기를 대안이라고 내놓는 그의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만행과 인권 유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행위는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나 그 어디에도 반성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반성은 커녕 수치스런 자국의 역사를 외려 찬양하며 자랑스러워한다. 게다가 히틀러를 한심한 듯 비난하며, 중국과 한국이 역사교과서 같은 문제로 항의를 해오면 까짓 거 외교를 끊어버리면 된다고 한다. 외교도 사람 사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나라와 사이좋게 지낼 필요가 뭐 있겠느냐, 그러니 의존할 수 있는 나라하고만 긴밀하게 사귀는 게 좋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 무례한 데다 무식하고 무경우인 저자를 비난보다는 동정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으로 공공연하게 일본인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으니 내가 보기엔 일본보다 저자 자신이 더 위험해 보인다.
[위험한 일본학]은 읽을수록 점입가경이다. 모든 악의 근원을 남녀평등교육과 민주주의에서 찾고 있다. 여자와 학생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매춘 방지법을 철폐하고, 도박을 허가하겠다는 가상의 공약이나, 자식 교육은 원숭이를 훈련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의식 수준을 의심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부친상을 읽으면서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회의까지 들었다. 여차하면 아내와 자식까지 전부 팔아버리고 도망쳐버릴 수 있는 아버지가 이상적인 아버지란다. 일도 잘 하면서 가정에도 충실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에게 가정의 의미는 이미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정은 그저 '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쉽지 않은 덤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추천하고,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불행하며, 아이에게 자기 방이 있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며, 아이에게 자기 방이 있어서 은둔형으로 변하고, 멍청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불행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의 아내와 자식이 생각났다.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불행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 논리와 괴변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쓰레기 논리에 일일이 반박하고 싶지도 않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일본의 원조 독설가라는 저자가 21세기 일본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일본이 불행한 9가지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는 책 소개글은 아무래도 수정을 해야할 것 같다. 일본 저급한 연예인의 '오만방자한 9가지 괴변'이 책에 어울리는 소개글이다. 일본인들은 그렇다고 쳐도 이 책에 열광하는 한국 독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