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핸드폰 액정에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사자성어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선배가 있다. 40대 초반에 대기업에서 명퇴당한 후  퇴직금으로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다가 1년만에 실패를 경험하고 그 뒤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알코올에 기대는 날이 많아졌다. 선배는 알코올의 기운을 빌어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은 심경을 토로하곤 했다. 그는 호랑이의 날카롭고 정확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되 남을 제치려는 마음을 버리고 소처럼 느리게 걸어야 한다고, 인생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깊은 사유에서 오는 방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천천히 걸으며 세상을 보면 놓치거나 잘못 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선배는 다행히 지난 3월에 탄탄한 중소기업에 임원으로 스카웃되어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

 

호시우행,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는 뜻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개혁이며 추구했던 개혁 방법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느리게 느리게 한걸음씩 걸어가고자 했다. 비록 참여정부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다음 정부에서 거둘 열매를 기대하며, 10년 후를 내다보며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위해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것이 말처럼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개혁의 성과를 채근했고 '확 갈아 엎으라'고 재촉했다. 의식을 변화시키는 개혁이었기에 개혁의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그치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사람들이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국민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따르려 했던 것이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 노무현’이 ‘바보 노무현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정치사적인 의미보다는 인간 노무현, 꿈쟁이 노무현에 초점을 맞춰 쓴 평전이다.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집스런 학창시절, 잘나가던 조세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가 되어 약자의 편에 섰던 이야기, 거리의 투사에서 정치인으로의 입문, 참여정부와 퇴임 후 봉하마을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책에도 소개되었지만 그는 링컨의 행보와 많이 닮은 정치인이며 그래서 한국의 링컨이 되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했다. 소망을 미완으로 남긴 채 스러져간 그를 만나는 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을 자주 만났다. 내가 만난 노무현 대통령은 당장 눈앞에 이익이 없더라도 옳은 길이라 믿으며 걸었고,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걸은 바보 노무현이며, 참으로 괜찮은 정치인이며, 소탈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이나 스웨덴의 팔메 수상처럼 여유롭고 부드러운, 그래서 친근한 친구같은 대통령이기를 원했다. 국민들의 이웃같은 소박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했던 그가 우리의 이웃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다는 자책감이 책을 놓은 후에도 떠나지 않는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 처녀와 둑길을 걸으면서 사랑을 나누던 청년. 학비가 없으면 장학금을 타고 책 살 돈이 없으면 공사판에 나가며 생계를 이어가던 청년. 인권 변호사가 되어 언제나 억울한 학생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 서 있던 청년. 최초의 정치적 팬클럽을 탄생시켜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정치인"이었다. 모든 권력을 무장해제하며 낮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새로운 패러다임과 발전 모델을 제시하며 개혁을 위해 애썼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소의 걸음을 걸으며 호랑이 눈으로 일관하며 정직과 원칙과 소신을 지켰던 바보 노무현은 자신의 몸마저 살 발라 자식에게 보시하고 가시만 남기고 떠나가는 가시고기 아버지였다. 훗날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할지 모르지만 오늘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오롯이 살아있는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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