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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매미 ㅣ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평일 오전 8시 10분쯤부터 20분 동안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안 여인은 아기를 보기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한 번만 보면 모두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다음 아기가 깨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집을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올려다보는 초롱초롱한 아기의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
부드럽고 따뜻한 아기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 아기를 내려놓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기를 감싸 안고 무조건 뛰었다.
사랑해서 안 되는 유부남, 그 남자의 아내가 낳은 아기를 납치해
사이비종교단체 엔젤 홈과 석양이 아름답게 지는 섬 등을 떠돌며 3년 반 동안 도피생활을 한다.
우발적인 사고라고 치부하기엔 그녀의 납치 이유가 많다.
임신중절로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것과
그녀가 아이를 낳았더라면 유괴한 아기와 한 달 차이가 나 엇비슷하다는 것,
낙태를 강요했던 남자, 그리고 인신 공격을 한 남자의 아내.
그녀 입장에서 보면 모두 유괴를 정당화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소설은 순간적인 실수로 끌고 가지만)
생후 6개월 만에 납치 당했다가 네 살 때 가족에게 돌아온 에리나는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자신을 극진히 사랑해준 여인과 소통하지 못해 단절된 가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에리나는
원인 제공을 한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어머니 곁을 벗어나 독립한다.
그러다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된다.
에리나의 원망과 증오의 대상인 납치범 그 여자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에리나의 임신은 자신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계기가 된다.
가족과 인생을 납치 당했던 자신의 환부만 바라보고 자신의 고통만 바라보던 에리나는
처음으로 납치범의 환부와 고통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에리나는 납치범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 였는지를 깨닫고 납치범 기와코를 엄마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고 배를 피해 때리는 엄마와도 화해한다.
[8일째 매미]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납치 당한 기와코,
자신의 선택과 상관 없이 다른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납치 당한 에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으로 인해 인생을 납치 당한 지구사,
이렇게 인생을 납치 당한 세 여자의 인생을 통해 가족과 사랑과 모성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저자 가쿠타 미쓰요는 7일만 살다 죽는 매미와 달리 8일째 사는 불쌍한 매미의 눈에도 세상은 살만하며,
고통스럽지만 감내할만 하다는 희망을 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가혹한 환경이나 현실을 살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인생이 납치 당했더라도,
우리에겐 살아야 될 이유가 있으며, 희망이 있으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