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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장영희 교수가 죽기 직전 병상에서 사흘 걸려 쓴 마지막 글이다.
그녀는 이 편지를 끝으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에 조용히 숨을 거뒀다.
장영희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샘터>를 구독하면서 였다.
매달 연재되는 칼럼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따스하고 정겨운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와
솔직하고 당당한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 맨먼저 읽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글에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평범한 일상에서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감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는
평이한 문체로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문장과 힘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글쟁이이며,
지리멸렬한 삶을 반듯하게 정돈시켜주는 타고난 교수가 아닌가 한다.
장영희 교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함박꽃 같은 웃음과 소녀 같은 단발머리다.
어디에서도 그녀의 다문 입이나 다른 헤어스타일을 본 적이 없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줄곧 단발머리의 웃음띤 얼굴이었다.
장영희 교수의 트레이드마크인 화사한 미소와 단발머리는 이제 볼 수 없지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들려주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도전정신, 희망의 노래는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를 것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샘터>에 연재된 원고를 다듬은 것이다.
생의 마지막 9년의 시간을 기록한 이 책은 그녀가 대부분 암과의 싸웠던 힘겨운 시간들이다.
2001년 유방암에 걸려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 2004년 척추암 전이와 지난해 간암 전이 등
세 차례에 걸친 암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힘든 시기에 쓰여진 글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난의 시간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장되게 밝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게, 그러나 강한 희망과 강한 긍정, 그리고 강렬한 도전정신을
때론 유머에 담아, 때론 감동을 섞어, 때론 여유를 부리며, 때론 고백하듯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글 속에는 그녀가 닮고 싶어했던 아버지가 있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업어서 등교시킨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를 닮은 그녀의 형제들이 있고,
가슴 아픈 제자와 안타까운 제자들이 있고,
사랑스런 조카와 유년의 착한 친구들과 꿈을 이루지 못한 친구가 있고,
느리고 시간관념이 희박하고, 무슨 일이든 코 앞에 닥쳐야 시작하는 그녀가 있고,
김빠진 일상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희망 말하기를 즐기는 그녀가 있다.
한 편 한 편을 읽다보면 공감되지 않는 글이 없어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게 된다.
교수가 아닌 친한 언니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소탈하고 편안하다.
모나지 않은 심성에 끌리고, 따뜻한 시선에 감동하고, 솔직함에 매료된다.
자신을 고상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녀가 더없이 친근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희망 바이러스를 퍼뜨린 그녀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3년만에 기적을 일궈냈다.
그리고 그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새봄을 기다린다던 그녀는 새봄을 기적처럼 맞았다.
삶 자체가 기적이었던 문학소녀가 기다린 새봄만 되면 그녀가 떠오르고 그러면 이 책을 다시 펼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