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성서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말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다.

그러나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가야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 꿈이 인생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꿈과 희망을 돈과 권력으로 맞바꾼 사람들을 경고하는 책이다.

어느 날 지하철역의 이정표가 모두 사라지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로 지하철역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초등학생 때 여러 갈래로 난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사방으로 뻗은 골목길을 몇 시간 동안 걸었으나  큰길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바람에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밝은 대낮 지상에서 길을 잃어도 두려운데 지하철역의 이정표가 모두 사라졌을 때의 혼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이정표 없는 지하철역은 내려야 할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과 목적지를 잃은 사람들로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가 예상된다.

 

이정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거대 권력으로 인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우리사회를 대변한다.

무소불위의 권력가 황금쥐의 비이성적인 식탐으로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철수다.

한 사람의 비이성적인 탐욕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수 국민이 겪어야 하는 불편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지하세계 건설로 합리화하는

기업의 총수와 절대권력에 아부하는 세력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고맙게도 우체통을 등장시켜 독자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선사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철수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7년째 엄마를 기다린다.

지하철역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철수에게 엄마는 '희망'이다.

현실은 희망으로부터 철수를 점점 멀어지게 하지만 엄마를 찾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철수에게 있어서 꿈은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며 그가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와 같다.

어린 몸으로 노숙자생활을 견딘 것이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의젓함,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 것은

'엄마'라는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수와 부장판사 그리고 황금쥐를 통해 희망과 인간의 본성, 인생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하철역의 이정표가 모두 사라진 날

황금그룹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한 부장판사가 이정표 없는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엄마를 잃은 철수와 만난다.

이정표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 철수가 붉은고양이들에게 쫓기다 길을 잃은 부장판사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달의 문을 통과해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된다.

그곳은 비록 가동을 멈추었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퍼뜨리는 꿈과 희망의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지하를 통해 차원 너머에 꿈과 희망의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희망은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절망 바로 곁에 있으며, 깜깜하고 어두운 지하에도 존재하는 것이며,

찾아나서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또한 꿈과 희망의 발전소로 가도록 알려주는 우체통을 만난 것은

아무리 막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사회를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엄마를 찾아야 하는 철수와 가족을 만나야 하는 부장판사는 공통의 목적을 소유하게 되지만,

철수가 황금그룹 총수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 부장판사의 태도가 돌변한다.

우리는 정의롭고 정직한 부장판사의 돌변한 태도에서 인간의 내재된 욕망과 속물 근성과 직면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심이며 자연스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자아가 누르고 조절하며 다스리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엔 속물 근성과 욕망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다.

제왕적 자본주의를 꿈꾸며 전국민을 시민노동자로 만들려는 황금쥐의 청사진 또한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치고 짓밟고 누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 하더라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인생은 그리 향기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더디더라도, 설령 어리석다는 조롱을 받더라도 정도를 걷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자명하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니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속도에서도 그리 뒤쳐지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절망의 깊숙한 곳에 묻힌 희망을 건져내어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소중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자신의 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하여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면 과감하게 선회하기를

'이정표'를 빌어 이야기한다.

당신의 이정표는 안전한가? 그리고 신뢰할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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