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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ㅣ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5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한 화가 외젠 알리 폴 고갱(1848~1903)은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고갱은 신문 정치부 기자였던 아버지와 스페인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고갱은 중학시절 언어문제로 고생을 했으며 성적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10대 후반에는 선원이 되어 배를 타기도 했으나 군복무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증권 거래소에 취직한다.
증권 거래소는 고갱에게 그림의 관심을 갖게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해준다.
이곳에서 동료 에밀 쉬프네케르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 고갱은
그림 전시장과 미술관을 찾아 다니는가 하면 미술에 관해 토론하고,
세잔, 모네, 마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갱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웠다거나, 어린시절에 그림에 대한 소질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유있는 직장생활이 그림에 눈을 돌리게 했고 습작삼아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를 통해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드러난 것이다.
초기의 습작 중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
인공미 보다는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자연에 접근해 개인적인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조각작품 하나를 전시하고 피사로의 가르침을 받아 시골 풍경화를 능숙하게 그리게 된 고갱은
인상주의 전시회에 그림과 흉상을 출품하며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사람받는 주제였던 눈을 주제로 그들의 수준에 도달하기 바라며 그린 <눈이 쌓인 정원>과
아내와 아이들을 화폭에 담은 <보지라르의 정원>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어서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고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작업에 임하는 동안 그의 아내 메테는
그림이 남편의 소일거리에서 남편을 완전히 사로잡은 열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갱은 전업화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부부는 점차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다.
사람들은 고갱의 혁신적인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외면한다.
무일푼인데다가 병까지 겹친 그는 전던지 붙이는 일당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브르타뉴로 향한다.
그가 퐁타방으로 간 것은 영감을 주는 새로운 모티브를 찾을 수 있고 민중의 전통이 살아있는 장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 시기에 그려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춤추는 네 명의 브르타뉴 여인들>은
혁신적인 양식과 특이한 구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그림자와 명암법이 사용되지 않고 윤곽선이 강조된 이 그림의 기법은 차차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고갱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순수하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브르타뉴와 그곳 여인들의 소박하고 투박한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고갱은 원시적인 삶을 경험하고 그림 작업을 하러 섬으로 떠났다가 풍토병과 가난에 시달려 수개월만에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신을 연결하는 탯줄을 완전히 잘라버리고 처음으로 원시주의에 다가가게 한다.
고갱의 창조성이 강렬하게 드러난 곳인 타히티 섬으로 향한 것은 마흔일곱 살이다.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타히티로 떠난 그는 원주민의 생활과 섬의 풍경을 많이 그린다.
원주민의 건강함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는 그의 그림을 완성시켜주며 많은 대작이 타히티에서 창조된다.
고갱은 이 섬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고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것은 가난과 병이었다.
이는 고갱의 자유로운 기질과 문란한 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다.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던 고갱을 만나는 동안 고갱이 싫어했던 밀레를 좋아한 화가 고흐가 떠올랐다.
동시대를 산 두 화가는 작품만큼이나 생애도 관심을 갖게 한다.
고흐도 고갱처럼 가난했으며 창녀와 동거한 전력, 병으로 고통 당하는 화가여서, 또 브르타뉴에서 알게 된 인연 때문에
고흐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두달간 함께 지내다 격렬한 언쟁으로 헤어지고, 이 언쟁으로 인해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다.
면도칼로 귓불을 자른 일은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하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고흐의 귀를 자른 것은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고갱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과 그의 작품을 풍요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