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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잭 린치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엘리자베스 1세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 고 말했고,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전세계적인 대문호이며 영국이 자랑하는 천재 극작가이다.
중학교 마지막 방학을 무료하게 보내다 우연히 집어든 [베니스의 상인]이 셰익스피어와의 첫 대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면 그정도는 알아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 셰익스피어에게 다가가게 했던 것 같다.
무역상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끈끈한 우정 사이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배치한 이 책은 내 선입견을 무너뜨리며
셰익스피어의 책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그를 정복(?)했다는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
나는 그 기분을 이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에도 눈을 돌렸으나
왜 그의 작품들이 찬사를 받는지, 왜 그의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건지, 왜 그가 위대한 작가인지도 모르면서 읽어 나갔다.
아무도 지어주지 않는 책임의식과 과시욕에 사로잡혔던 시기의 독서였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는 셰익스피어는 만들어진 작가, 조작된 문화영웅이라는 전제하에
셰익스피어가 오늘날의 셰익스피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추론을
사후 400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작품들이 어떤 개작 작업을 거쳤고, 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위조 되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한마디로 매우 유능한 한 극작가가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 같은 존재로 바뀌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의문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1857년에 델리아 베이컨이라는 미국인 전직 교사에 의해서다.
델리아 베이컨은 [펼쳐진 셰익스피어의 희곡의 철학]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알려진 것들이 사실은
프랜시스 베이컨, 월터 롤리 경, 에드먼드 스펜서가 함께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 원작자 여부를 두고 유명 연극배우, 연출가 287명이 '합리적 의심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이유로 친필 원고가 없는 점과 생전에 그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가 만들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셰익스피어의 조용한 장례식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생전의 그와 사후의 그는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저자는 그의 작품에 관여해 자기 입맛대로 작품을 이용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은 극작가, 배우, 편집자, 비평가, 정치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위조되고, 미화되고, 개작된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개선'하게 만든 불평의 이유는 대부분은 심미안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작품의 형편 없는 줄거리, 3일치의 무시, 희극과 비극을 막무가내로 섞어놓기, 외설적인 언어 등이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개작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정책과 정당, 교육 프로그램, 전쟁의 의제로 진척시키는 데 그의 작품을 사용했다.
정치적 목적과 시대적 맥락, 영국 우월주의의 선전도구로 그의 작품이 차용된 이유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가장 위대한 문학 천재가 자기편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대중의 문화사회적, 정치적 욕망에 의해 재해석되고 조작된 문화영웅 중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셰익스피어의 성취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인류의 관심과 간섭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하고,
역자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를 꿰뚫는 통찰력이야말로 그의 작품과 명성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고
평한다.
이 책은 나에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침침한 눈을 열어주고 문화영웅 만들기의 과정을 즐겁게 탐색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책을 덮는 데 뭔지 모를 뿌듯함과 묵직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