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 세상은 백성의 것이다 샘깊은 오늘고전 9
작자미상 지음, 윤기언 그림, 김기택 글, 강명관 해설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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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인 백정 출신으로 조선 중기에 활동하던 도둑 임꺽정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줘 의적이라 불린다.

임꺽정은 관리의 부패가 심해져 민심이 흉흉해지자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백성을 모아 탐관오리를 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 해서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도둑의 우두머리이다.

장길산은 서얼, 승려 세력과 함께 봉기하여 어지러워진 사회 속에서 사회 하층민들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거사를 도모하려고 했다.

홍길동은 신분과 출생연도는 기록된 바가 없으나 임꺽정과 같이 비천한 출신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홍길동은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가진 의적의 우두머리로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지만,

1440년(세종 22)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역사상 실존인물이었음이 밝혀졌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둑으로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을 꼽았다.

 

이 세 사람과 비슷한 인물을 하나 더 있으니 우리는 그를 홍경래라 부른다.

홍경래는 부패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힘없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인물이다.

그 역시 부자나 나라로부터 빼앗은 곡식과 재산을 모두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홍경래]는 오늘날 역사소설이나 드라마 속 농민 반란 묘사에 임꺽정과 장길산 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친

홍경래의 삶과 '홍경래의 난'을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한 책이다.



샘깊은오늘고전 시리즈 제 9권은 
민담과 전설 속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신비로운 영웅으로 그려지는 홍경래를 다룬다.

그러나 김기택 저자는 초자연적인 일화나 사실과 다르게 부풀리지 않고 [홍경래전]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충실히

따라가며 ‘역사 속 인물 홍경래’를 살려냈다.

 

홍경래(1772~1812)가 살았던 조선 후기는 양반들의 권력 싸움이 어느 때보다 심하고,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이 책은 홍경래의 어린 시절, 과거 응시와 낙방, 당시의 사회 모습과 변동,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야만 했던 이유,

일반 백성들의 의식 변화, 봉기의 전 과정, 정주성의 최후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홍경래는 과거의 예비시험인 진사시에 합격하지만 2차 시험에서는 낙방한다.

비록 2차에서 떨어졌으나 과거에 응시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지식인이며 식견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세도정치와 부패정치 평안도 양반에 대한 차별과 벼슬길이 막힌 양반,

실력에 상관 없이 과거에 낙방하는 많은 응시생들과 고통받는 백성들은 양반 특권층 타도를 목적으로 하나로 결집된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시대의 민중 반란 중 가장 규모가 큰 농민 반란으로 동학 농민 운동에 영향을 준 민란이기도 하다.

그는 이 반란을 위해 전국을 돌며 무려 10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다.

농민을 중심으로 처지가 서로 다른 양반과 양민, 보통 상인 등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난을 일으켰지만

결국 관군에게 패해 실패한다.

 

반란 실패의 원인은 새로운 미래상을 농민들에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은 분석한다.

하지만 홍경래의 난은 지금 세상이 옳은 세상이 아니라는 점, 결코 변하지 않은 세상이란 없다는 점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나라와 지도자들의 잘못이 드러나고, 못 배우고 가난한 농민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도 알려주었다.

저자가 표현했듯이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 뜻은 훌륭했으며 타협하지 않는 곧은 정신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3.1 운동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옥에 갇히고 죽었으나 식민지에서 신음하던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4.19 혁명은 오래가지 못했으나 평범한 국민의 힘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를 보여"준 것과 같은 이치다.

 

윤색되지 않은 원래 모습 그대로의 홍경래를 만났다.

꾸미지 않은 그의 모습은 대장부다운 기상 뒤에 슬픔이 어려있어 안타까움을 동반했지만

그가 주동했던 민란의 실패가 주는 교훈이 위로를 준다.

문무를 겸비한 혁명가 홍경래의 이름이 한동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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