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하버드나 예일 같은 미국 명문대들이 법학이나 의학, 경영학 전공을 대학원 과정에 둔 것은 전문지식과 기술은 학부에서 인문교양을 충분히 섭취한 뒤 배워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버드대 케네디행벙대학원의 대통령학 교수 데이비드 거겐은 "시나 소설 같은 문학 강의를 꼭 들어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시카고 대학은 재학생들에게 강제로 고전 100권씩을 읽혔다. 고전 100권 읽지 않을 경우 졸업할 수 없는 졸업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전을 읽었다. 하지만 수년, 수십년이 지나면서 시카고대는 3류대에서 명문대로 거듭났고 노벨상 수상자를 100명 이상 배출한 세계가 알아주는 명문대가 되었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바래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책, 바로 고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영화 평론가이자 저술가인 데이비드 덴비가 컬럼비아 대학 학부생들을 위한 교양과목인 <현대문명>과 <인문학과 문학> 강좌를 1년 동안 청강한 기록이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지 30년이 지난 후 다시 대학을 찾은 이유는 안정된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까닭없이  공허해지는 가슴과 미디어에 매몰되어 잃어가는 정체성,  삶이 고갈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밝힌다. 데이비드 덴디는 모교에서 고전작품들을 읽는 교양강좌를 청강하며 고전목록에 수록된 고전들을 읽는다. 이 책은 고전을 읽으며 일어난 모든 사고의 과정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독서일기 같은 책이다. 또한 수업을 들으면서 30년전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고, 수업에 임하는 학부생들의 생각과 태도, 토론 내용들도 그대로 담았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에는 두 가지의 집필원칙이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을 읽고 정리하되 진정으로 자신을 사로잡은 책에 대해서만 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 자신의 반응과 강의실에서 다룬 바에 의거하며 2차 자료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즐겁고 독자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려고 전문적인 비평도 피했다고 밝힌다. 데이비드 덴비는 이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어 천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고전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수업 장면은 다른 책을 통해서 이미 느낀바 있지만, 이 책 만큼 생생한 강의 현장감을 전달해주는 책도 없을 것 같다. 컬럼비아 대학 수업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점과 학생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먼저 말하게 한다는 것, 교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깊은 사고를 유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우리와 다르다. 활발한 토론과 논쟁으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달하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바로 미국의 저력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는 일전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로부터 들은 경험담과 상반되는 강의실 풍경이라 씁슬하기도 하다. 그 후배에 따르면,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는데 발제자들이 하나같이 준비해온 내용을 국어책 읽듯이 '읽는다'고 한다. 진행은 고사하고 자신의 의견조차 제대로, 자연스럽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토론을 할 때에도 배부분의 학생들이 침묵을 하고 한 두명만 참여한다고 한다. 대학원 강의실 풍경이 이정도이니 대학은 말하나마나 아닐까 싶다. 미국도 학기 초에는 학생들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자신감을 갖고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말하는 당당한 학생들로 바뀌었다. 이를 보면 꾸준한 교육, 제대로 된 교육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대학들이 지난 3월 신학기에 수강생이 없는 강좌들을 없애면서 폐강의 비운을 맞은 것은 대부분 인문학 강좌들이라고 한다. 순수학문보다는 실용학문을 선호하고, 실용학문이 인기좋은 우리의 대학 풍경은 사람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는 장이 아니라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전은 고사하고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는 사회가 가는 방향은 어디이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많은 대학생들과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관계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선 나부터 미루기만 했던 고전을 차근차근 한 권씩 만나봐야 겠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지적 저수지에 풍덩 빠지고 싶은 사람을 고전으로 유혹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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