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갤러리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2
김영범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전 읽은 일간지의 기사는 나를 젊은날로 데려갔다.

한때 대학가에 '데칸쇼'라는 말이 유행했다.

근대 유럽을 만든 철학자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이르는 말이다.

전공이야 어떻든 대학생이면 '데칸쇼'쯤은 알아야 행세할 수 있는 것 아냐냐는 시대 분위기 였다.

되든 안 되는 데칸쇼와 맞붙어보겠다고 덤비는 학생들이 많았던 인문학이 전성기일 때 풍경이다.

 

나는 데칸쇼와 맞붙어보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순전히 겉멋으로 읽지도 않는 철학책을 가슴에 안고 다녔다.

그때 철학책들은 왜그렇게 어렵고 졸렸는지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아 교양과목으로 들은 게 전부다. 지금처럼 알아듣기 쉬운 철학책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일찍 접근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대중 역사서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붐을 일으키는 것을 보더라도

철학책도 일반 교양 독자를 위해 대중 철학서 내지는 인문의 대중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 갤러리]는 바로 일반 교양 독자를 위한 친절한 철학책이다.

고대 철학에서 현대 철학에 이르는 서양 철학의 흐름을 한 장의 계보도로 정리해서 그림만 보고도 사상사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용어나 사상을 알기 쉬운 문체로, 대중적인 서술 방식으로 철학사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고대 철학자에서부터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계보와 논쟁을 알기 쉽게 다루고 있는

[철학 갤러리]는 <풀로엮은집>의 한 장의 계보도와 함께 읽는 '지식 계보도' 시리즈 두번째 책이다.

지식 계보도 시리즈 첫번째 책인 [신화 드라마]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했다.

 

나는 철학자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는 커다란 계보도를 한쪽 벽에 붙여놓고 책을 읽었다.

책은 인물이나 용어를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철학자들의 이름과 용어 옆에 페이지 수를 적어놓는 세심함까지 보여준다.

저자는 역사를 고대, 현대, 근현대라는 굵은 마디로 나누고 마디에 대한 개념과 그 시기에 활동했던 철학자,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철학자들의 관계와 대립 관계의 철학자들,

철학자들의 작품 속에 배인 시대정신과 세계관,

철학자들의 사상을 떠받치는 기둥을 다루고 있다.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있게 다루지는 않지만,

철학자들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어서

단순히 그들의 생애만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있어서 좋다.

이제 어느 철학자가 어느 시대 인물이고, 그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누구와 대립관계에 있었는지, 그가 실았던 시대사상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최초의 철학자를 시작으로 기나긴 서양 철학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보도록 정리한 이 책은

철학에 관심은 있으나 철학이 주는 부담감이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망설이던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나에게 이 책은 철학책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오늘날 철학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하고,

일간지 기사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사치라고 전한다.

이러한 때에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허물어지게 마련인 사유의 역사, 곧 철학을 다시 한 번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저자는 묻는다.

문사철(文史哲)이 교수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를 위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에 만난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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