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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쾌인쾌사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정사에 바탕을 두거나 철저한 문헌의 고증을 거친 역사책만 읽다가 문집과 야담집을 바탕으로 쓴 역사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조선사 쾌인쾌사]는 조선 시대를 풍미한 통쾌한 이야기와 유쾌한 사람들, 은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조선 시대판 ‘썬데이 서울’ 같은 책이다.
민초들의 생활상과 시대의 문화, 선조들의 풍자와 해학, 일화와 시를 짧막하게 소개하고 있어 가볍게 읽기에 좋고,
중간 중간의 풍속화는 보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저자는 경제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주기 위해 이 책을 냈다고 밝힌다.
[조선사 쾌인쾌사]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유쾌, 상쾌,통쾌한 이야기를 읽고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어둡고 우울한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지게 하며,
어려운 경제 여건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뚫고 나가라고 한다.
[조선사 쾌인쾌사]는 조선을 웃기고 울린 유쾌한 사람들 쾌인(快人),
인생 뭐 있어? 거침없이 하이킥 쾌사(快事),
막힌 속을 뚫어주는 한 줄의 여유 쾌시(快詩),
일상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 웃음보따리 쾌담(快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쾌인과 쾌사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많아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된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불행한 시인 김삿갓과 매월당 김시습, 오성과 한음의 이항복, 천재 화가 김홍도를 다룬 꼭지가 그랬지만,
너무 짧고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다뤄서 아쉬운 채 헤어졌다.
목은 이색이 첩첩산중에서 목 놓아 통곡하며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을 마음껏 쏟아놓은 이야기는 가슴 찡하다.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술을 좋아했던 신용개와 까칠한 아웃사이더 정수동, 조선 최고의 무식한 왕자 송평군은
처음 만나는 인물이라 흥미를 끌었다.
술에 취해 수레에 실려 다니는 일이 잦았던 신용개가 국화 여덟 분과 대작했다는 일화는 저자의 표현처럼
고고한 선비의 멋을 보여주고,
해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아기를 쉽게 낳도록 하는 불수산을 지어 오다가 벗을 만난 정수동이
그자리에서 벗을 따라 금강산과 묘향산 유람에 나서는 장면은 그 시대 가장의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정종의 둘째 아들 순평군이 마흔이 될때까지 일자무식이었다는 것은 의외다.
조선에는 세자시강원이라는 관아가 있고 거기서 왕세자의 교육을 맡은 걸로 알고 있다.
비록 세자로 책봉되지 않은 왕자들이라도 스승을 붙여서 교육을 했는데 순평군은 어째서 마흔이 될때까지 일자무식으로
있었는지 모를일이다.
[조선사 쾌인쾌담]이 복잡하고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해주는 야사나 일화 중심의 가벼운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아쉬움이 남는다.
쾌시와 쾌담에서 주로 19금에 가까운 내용을 다룬 것이 그렇고,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내용이 그렇다.
음담패설을 읽고 유쾌하게 여기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나 유쾌할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다.
저자가 음담패설을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인물에 서너개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일화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덧붙이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하지만 복잡한 마음이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 기분전환용으로 좋다.
'썬데이 서울'을 즐겨 읽었던 기성세대에겐 흥미로운 책으로,
썬데이 서울이라는 잡지를 모르는 신세대는 부모세대의 잡지를 조선판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