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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거대한 슬픔'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신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다.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나?
여하튼 나는 극도의 슬픔이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은, 비교적 굴곡 적은 삶을 살았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거대한 슬픔'에 빠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상처나 아픔이 없는 비단결 인생도 아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있을까마는 나는 신의 대답을 꼭 듣고 싶은 문제를 수십년간 끌어안고 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내 능력으로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숙제 인지도 모르겠다.
" 그때 왜 침묵하셨을까?"
그렇게 엎드려 대답을 구했는데, 그렇게 간절히 대답을 기다렸는데도 왜 침묵하셨는지 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다.
내 선택을 가로막을 수 있었으면서, 내 결정을 제지할 수 있었으면서 왜 가만히 계셨을까?
그토록 기도했건만.
이 일은 내가 정색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높인 일이며 가장 서운함을 느낀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도 이 서운함과 원망을 거둘 자신이 없다.
잊은듯 하다가도 불현듯 되살아날 때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감정을 추스리기 어려워 이 일을지우려 해보았지만
언제나 사소한 문제를 타고 찾아와서는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정말이지 반갑지 않은 이 불청객을 퇴치하지 않는 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오두막]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사람은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면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놀라다가 나중엔 분노한다.
사람에겐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고,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이 있다.
그일을 기억하는 것조차 당사자에게는 고통일 것이다.
기억 저편에 있는 오래된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지 않았다면 그건 잠복 중인 진행형의 아픔이다.
언제든 건드리기만하면 바로 반응하는.
내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맥은 사랑하는 딸이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자 그 충격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빗장을
굳게 채운다.
그로부터 4년여 세월이 흐른 어느날 맥은 자신을 오두막으로 초대하는 파파의 쪽지를 받는다.
오두막은 맥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스런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켜 주기 위해 넘어진 그곳으로 우리를 다시 부르신다.
거대한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슬픔이 시작된 장소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나는 오두막으로 맥을 초청한 파파가 내 문제까지 건드려주길 기대하며,
맥이 불안과 기대와 의심을 안고 오두막을 찾은 것처럼 나도 같은 마음으로 동행했다.
오두막에서 흑인 여성의 파파(하나님)와 중동 청년의 예수(예수님)와 동양 여성(성령님)의 사라유가 맥을 반갑게 맞아준다.
거대한 슬픔을 막아주지 않은 하나님, 사랑하는 딸을 지켜주지 않은 하나님,
자신의 기도를 거절하신 하나님과 마주한 맥의
대화는 너무도 감동적이고, 심오하고, 진솔하고, 경이롭다.
고통을 가져다 준 그곳에서 맥은 용서와 치유, 사랑과 자유함을 경험하며 서서히 변해간다.
그 과정이, 대화를 통해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용서와 치유와 자유함으로 충만해지는 과정이 너무도 감동적이다.
분노와 고통과 상처의 상징인 오두막이 부드러운 대화가 있는 곳, 치유의 강물이 흐르는 장소로 변해 간다.
내 입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오두막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거룩한 곳으로 변해 간다.
내 아픔만 토해내고 내 상처만 호소하던 오두막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는 열린 공간으로 변해 간다.
어둡고 캄캄하고 눅눅했던 오두막이 따스하고 밝고 환한 세계로,
분노와 갈등으로 단절된 관계가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회복되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오두막으로 초청하시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상심의 심연에 빠져서, 우리의 아픔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마음의 빗장을 풀지 않아서 초청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듣기까지, 빗장을 풀기까지 기다리셨다가
은밀하고 잔잔하게 부르셔서 부드럽고 작은 소리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맥을 초대하신 하나님이 치유의 현장인 [오두막]으로 지금 우리를 초청하신다.
상실의 슬픔으로 가득한 무거운 마음을 이제 그만 가볍게 하라고 [오두막]으로 손짓하신다.
[오두막]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정한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신선할 뿐 아니라 신학적 통찰과 접근이 놀라운 책이다.
책에는 여섯 자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소설을 쓴 아버지의 마음과 신앙이 잘 녹아 있다.
그 마음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오두막을 지었던 작가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은 이 작품은,
결론짓고 싶은 내 해묵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그 길을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이 그때 왜 침묵하셨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바로 내가 쥐고 있었다.
하나님은 내 선택을 믿으시고 존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