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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할 때 '이해한다;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 기분을 내가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위로의 말은 상대방에게 든든함과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상대의 감정만큼, 상대의 입장만큼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상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상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상대의 감정에 완전하게 공감할 수 없으며,
상대의 입장에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 이해할뿐이다.
우리 입 밖으로 뱉은 '이해한다'는 말은 대부분 말뿐인 이해이거나 부분적인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존 하워드 그리핀은 흑인의 차별과 억압, 박해와 미움, 불이익과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 흑인이 되었다.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을 이해하는 것도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아야 했던 시절에 위험과 비난을 감수하고
한시적이긴 하지만 흑인이 되었고 흑인의 입장으로 살았다.
그리핀이 흑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남부 흑인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기사와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핀은 피부과 전문의의 협조를 받아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을 온몸에 쪼이며 심한 고통을 겪은 후
중년의 중후한 흑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과거의 존 그리핀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완전히 지워지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도 완벽하게 흑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거울 속에 비친 피부가 검은 존재를 보며 낯섬과 충격과 외로움과 두려움과 극심한 공황상태에 빠진다.
나를 안쓰럽고 부끄럽게 만든 부분이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거울 속 낯선 사람은 바로 그가 이해하고자 했던 존재였고, 그가 다가가고자 했던 또 하나의 자신인 '타자'였다.
그가 말한대로 겉보기에 자기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여긴 그 '타자'였다.
이제 그리핀은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고통을 거쳐 흑인만이 알 수 있는 '불공평' 속으로 들어간다.
50여일 동안 흑인 차별이 극심한 딥 사우스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불공평한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가 경험한 차별은
지갑에 돈이 있음에도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갈 수 없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한참을, 아주 한참을 걸어야 했고,
힘들어도 잠시 앉아서 쉴 수도 없고,
매번 정중한 말로 일거리를 거절당했고,
노골적인 무시와 증오, 반감의 시선을 받았다.
오로지 피부색을 근거로 말이다.
백인 사회를 치유하고 평화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꿈꾸었다고 굳이 흑인이 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렇게 흑인이 되어야 했을까?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왜?
읽으며 궁금했다.
정답은 아니지만, 그리핀이 명쾌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나는 나름의 대답을 굴곡많고 험난한 그의 인생 여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15살 어린 나이에 떠난 프랑스 유학,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 제2차 세계대전과 미 공군 입대,
솔로몬 제도의 최고 수장과의 친분과 그의 끔찍한 죽음, 시각장애와 하나님의 계시,
완전한 실명, 농장의 성공, 신학과 철학 공부, 결혼과 4명의 자녀,
10년만에 다시 찾은 시력과 수도원에서의 묵상.
평탄한 인생이 아니다. 평범한 삶도 아니다.
파란 많은 삶이다.
그리핀의 인생 여정 가운데
솔로몬 제도에서의 1년과 시력을 잃었던 10년은 그가 흑인이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대목이며,
실명과 하나님의 계시, 신학 공부와 수도원에서의 묵상, 다시 회복한 시력 등은 흑인이 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암시해 준다.
솔로몬 제도의 외딴 마을에서 1년간 살 때 처음에 그는 이 토착민을 '원시인'으로, 곧 '타자'로 여겼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꼬마의 안내를 받으며 정글 탐험을 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꼬마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어른, 즉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지역 주민의 시각에서 볼 때 그는 '타자'고 열등한 존재며, 그들은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시력을 잃고 살았던 10년 동안 '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은 그를 장애인으로 보며 시각장애와 관련 없는 면에서도 열등할 것이라고 여긴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흑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여기는 백인처럼.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열등한 '타자'로 단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고 폄하하는 것은 상대는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
세사의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인격체이다.
이 두번의 경험은 '타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했고 '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게 했다.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은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한 모진 훈련으로 받아들였고,
시력을 다시 찾은 것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고 생각한 그리핀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울 의지를 굳혔다.
그는 [블랙 라이크 미]로 인해 모형 인형을 동원한 린치와 체인으로 무자비하게 당한 구타와 인신공격과 살해 위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고 그 사명에 목숨을 걸었던 존 하워드 그리핀에게 경의를 표한다.
[블랙 라이크 미]가 왜 수천 군데가 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필독서로 선정되었는지,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정말 오랫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