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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 처세어록 - 경박한 세상을 나무라는 매운 가르침 ㅣ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정민 교수님의 [미쳐야 미친다]는 1년 내내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마음이 울적한 날에 습관처럼 이 책을 펼쳐든다.
옛 선비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따뜻해진다.
화려한 삶은 아니었으나 감동적일 만큼 성실히 노력한 흔적이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스러움이나,
스승을 대하고 벗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그 어떤 삶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신분이 미천하고 평생 가난 가운데 허덕이는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이들의 열정은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성대중 처세어록]은 18세기 영정 시대에 활동한 서얼 출신 문인 성대중의 가르침을 담았다.
이 책은 저자 이름만 보고 망설임 없이 선택한 책인데,
성대중이 이덕무와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글을 평해주는 사이라고 하니 더욱 반가웠다.
이덕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비다.
서얼 출신의 두 사람이 규장각에서 함께 일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책은 성대중의 저서 [청성잡기靑城雜記] 가운데 '처세'와 관련된 내용을 선별한 후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성대중의 짧막한 경구를 저자답게 쉽고 담백하게 풀어놓아서 읽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책은
호랑이 처럼 매섭게 보고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하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을 말하고 있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중용을 강조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오는,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실패의 경험이 성공을 만들고, 역겨이 있어야 순경(順境)이 달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 등을 말한다.
이밖에도 겸손과 기다림, 은혜, 가난과 도리와 배움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대중 처세어록]은 바른 몸가짐과 행실에 대한 교훈을 짧지만 굵은 어조로, 단순하지만 깊은 가르침으로,
소박하지만 매서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성대중은 '해로움을 멀리하는 법'을 이렇게 말한다.
"아침 해와 저녁 해는 한 햇빛이 옮겨간 것이다. 무더위와 매서운 추위는 같은 기운이 변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얻으면 반드시 저기에서 잃게 마련이다. 처음에 장하면 끝에 거서 만드시 시들게 된다.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지극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높은 자리를 사양하여 낮은 곳에 거하고,
부유함을 사절하여 가난하게 지낸다. 영화로움이 없으면 시듦도 없고, 공이 없으면 죄도 없으며, 복이 없으면 화도 없다.
몸을 온전히 하고 해악을 멀리함에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일시적인 기분에 교만하고 잠깐의 좌절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햇빛과 계절에 비유한 문장이 탁월하다.
모든 만물에는 다 때가 있기 마련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영화로울 때가 있으면 시들 때가 있고, 부유할 때가 있으면 가난할 때도 있다.
해가 뜰 때가 있으면 해가 질 때도 있는 법이며,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도 있다.
영원한 여름이 없고 영원한 겨울이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세상만사도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
그러니 대비하는 인생, 욕심없는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지는 자세로, 검소한 생활로, 베푸는 마음으로,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 추운 겨울과 모진 가난과 저물어가는 권력의 때에도 서럽지 않을 것이며 해로움도 없다는 얘기다.
이렇듯 그의 가르침은 요란하고 거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결코 아니다.
내공없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내공을 쌓으려면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음을 휑궈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찌보면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지 못하는 옛 선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 같지만
처세에 있어서 몸가짐이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 아닌가 한다.
겉모습을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한들 부실한 기본 위에서는 오래 버텨주지 못한다.
우리의 행실과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하는 이 책은 천천히 읽을수록 깊고 그윽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옛 선비의 따끔한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분들,
내면을 살찌우고 싶은 분들, 진정한 처세를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