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편지를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편지를 써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흐릿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저만치 밀려난 편지가 그리워지는 시대.
소설을 읽으면서 빛바랜 추억이 하나가 떠올라 혼자 미소지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낯선 이름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병]과 함께 편지 한 통이 내 앞으로 배달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남학생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지에 정갈하게 쓴 글씨며 제법 수준있는 내용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 남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이나 소설은 자연스럽게 그날의 감흥을 되살아나게 했다.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아무리 읽고 읽어도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특이한 제목이다.
'건지'는 2차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의 섬이고,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은 건지 섬 주민들이 만든 문학회 이름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과 용기, 그리고 우정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은 보기 드물게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주인공 줄리엣이 낯선 남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줄리엣은 문학회 회원들과 편지를 주고 받다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특이한 이름과
건지 섬 사람들의 사연에 점점 빠져들어 백만장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건지 섬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줄리엣이 만난 건지 섬 사람들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유쾌하다.
작가는 캐릭터의 귀재라 불릴 정도로 작품 속 캐릭터들은 매혹적으로 그리고 있다.
줄리엣을 닮은 엘리자베스와 줄리엣의 모성애를 자극한 키트, 말더듬이 도시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참혹한 상황 속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순수한 문학사랑과
문학회를 통해 힘든 시기를 견디며 희망을 노래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평생을 여러곳의 도서관과 서점, 지역 신문의 편집을 맡았던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늘 책과 함께 했던 저자의 문학사랑과 책을 통해서 위로받고 책을 통해서 희망을 찾는
저자의 삶을 투영한 작품 같기도 하다.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 쓰기를 꿈꾸었던 작가는 안타깝게도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데뷰작이자 유작인 이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줄 것을 예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