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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호사가들은 오늘과 같이 갈피를 잡기 어렵게 뒤얽힌 세상을 '난마'라고 부른다.
저자는 오늘과 같은 상황을 "꿈과 희망과 이상의 기반인 믿음을 상실한 상태, 곧 ‘난세’라고" 말한다.
오늘이 난마이든 난세이든 어렵고 막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암울한 시대를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중국사의 현장을 조사하고 연구한
중국 전문가인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난세를 헤쳐나갈 해답을 찾아 이 책에서 소개한다.
집에 티비가 없어서 EBS 기획시리즈 특강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를 방영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특강이 끝난 후에서야 지인으로부터 강의에 대한 찬사를 들으며 강의를 놓친 걸 아쉬워했다.
그 아쉬움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난세에 답하다]는 1년간 강의 내용을 책으로 다듬어 세상에 내놓았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책을 선택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사마천과 그가 쓴 [사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역사책이나 고전에서 사마천과 [사기]는 인용구와 관용구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수년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소개받은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조금씩 쌓이면서
관심이 증폭되었고 마침내 사마천의 삶을 깊이있게 만나고 싶기까지 했다.
기대했던 만큼 책은 재미와 감동과 놀라움과 연민과 감탄 등 온갖 감정을 골고루 준다.
사마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출생 연도를 둘러싼 논쟁이나 그가 태어나 살았던 마을과 울화병으로 죽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사기]를 저술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남성성을 거세당하는 치욕을 견디며,
괴로운 심경을 벗에게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이미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안스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저자는 중국을 알기 위한 입문서, 중국을 알기 위한 필수 교양서로 [사기]를 꼽았다.
[사기]를 읽지 않으면 중국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2,100년 전쯤에 태어나 이후 2,000여 년 동안 중국 학술계를 이끌어오며
'절대 역사서'로 불리는 [사기]에는 온갖 부류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유명인도 등장하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도 등장하고, 영웅호걸도 등장하는 인간극장이다.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엮은 역사서,
인간에 관한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점 등은 우리 역사의 기술 방식과 사뭇 다르다.
책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한무제도 무서워할 만큼 강직했던 급암이나,
항복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삶아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끝까지 투항한 유방,
유머로 고난을 이겨낸 진문공와 진시황의 지하 세계 등 여러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밖에도 사마천의 경제관과 인재 등용하는 원칙,
고사성어의 유래를 전해주는데, 고사성어에 담긴 지혜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신기하게도 2,000년 전의 역사나 오늘의 현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난세를 극복하는 길은 획기적이고 기발한 묘수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 오늘을 배우고,
역사가 주는 교훈을 오늘에 적용하고,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 개개인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사마천과 [사기]에 대해 한 발 다가서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다음 읽을 책은 아무래도 [사기열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