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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평점 :
보일러 화덕에 나무를 넣으러 가다 테크에 아기 새 한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황조롱이다.
가끔 있는 일이다.
연녹빛의 통유리 거실창을 허공으로 착각한 새들이 창에 부딪혀 죽는다.
거실창은 앞산의 풍광을 고스란히 받아 내비치고 있어서 새들이 산으로 착각한다.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속도를 늦출 수 없었을 게다.
새들에게 못할 짓 하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하다.
삽 한 자루 들고 뒷산에 올라 돌처럼 딱딱해진 작은 몸뚱이를 묻어 주었다.
못할 짓은 새들에게만 하는 게 아니다.
뒤곁 밤나무의 열매를 독식하던 다람쥐들은 우리에게 밤을 거반 빼앗기고,
일광욕하러 나온 뱀들은 사람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돌에 맞아 죽고,
자동차 바퀴에 치인 청개구리와 참개구리,
밭을 일굴 때 뽑혀나간 여린 들꽃까지, 참 많기도 하다.
야생동물과 야생화의 보금자리에 난데없이 작년부터 우리가 들어와서 들쑤셔놓은 꼴이다.
그래서 미안하다.
하지만 저들이라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다.
저들도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하니 말이다.
한여름 땡볕에 노모와 둘이 심은 메주콩과 서리태, 팥을 고라니란 놈에게 도둑 맞았다.
배짱 좋은 고라니 녀석들은 아예 콩밭에서 단체로 기식하며 우리의 것을 훔쳐먹고,
콩을 털자 이번에는 김장 무를 갉아 먹었다.
작은 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큰 것으로만 골라서 갉아 먹는 얌체족이다.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큰 맘 먹고 심은 옥수수는 새들이 와서 듬성듬성 쪼아 먹어 나누고나니 우리 먹을 게 부족했고,
친척들과 함께 먹으려고 심은 고구마는 들쥐가 갉아 먹어서 나누지도 못했다.
그러니 피차일반 아닌가.
제천 외곽의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판화작업을 하는 이철수님.
소탈한 농사꾼을 만나는듯 푸근하고 정겹다.
자연을 대하고 하늘을 대하는 겸손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소박한 필체에 담아내는 꼿꼿한 외침이 매섭다.
쓰여진 글보다 행간이 주는 여운이 더 애틋하다.
짧은 문장의 여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엽서 속 그림은 단아한 기품이 넘친다.
철학적 사색이 배인 단상이 아름답다.
자연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마음이 따스하다.
읽는이의 입가에 엷은 미소를 얹게하는 책이다.
읽는이로 하여금 자연을 동경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쩜 이리 비슷할까.
마루에 내려 앉은 하얀 눈빛이 있는 겨울이나,
한낮에 선걸음으로 다녀가는 인색한 겨울 햇살이나,
싱그러운 꽃냄새 가득한 뜰이나,
잔디 주위에서 지헤롭게 생존하는 잡초나,
쏟아질듯 많은 별과 휘영청 밝은 달빛이나,
엉터리 농사꾼이라 군것질 농사할 때 얼굴빛이 더 환한거나,
황홀경까지는 아닌듯 하지만, 나름의 깊은 재미가 있다는 농사 이야기나
모두 내가 사는 산골과 닮아 있다.
40분 거리에 사시는 이철수님의 집으로 단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