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외우는 파랑새
방민지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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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는 것은 설레이는 일이며 동시에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자녀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은 부모의 소중한 특권이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은 부모나, 자녀가 방황하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올곧게 자라길 바라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길 원한다.

하지만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 키우는 사람은 함부로 입찬 소리 하는 것 아니라는 옛말이 있다.

내 자식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부로 남의 자녀 흉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고의적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자녀를 밖으로 내모는 부모는 없지만,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방황하고 배회하며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있다.

자녀와 의사소통 방법을 모르는 상당수의 가정에서, 부모 역할을 소홀히 하는 역기능가정의 아이들이 특히 그렇다.

 

 

언어적 학대를 서슴치 않는 예린이 엄마는 자신의 부정적인 말이 

예리한 칼보다 더 아프게 예린이의 마음을 도려낼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녀도 그녀의 엄마에게 부정적인 말, 모진 말을 듣고 자랐으니까.

어쩌면 알면서도 몸에 굳게 밴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린이 엄마의 언어 폭력은 자녀는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운다는 교훈을 준다.

답습은 무서운 것이다.

예린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중에 결혼을 했다면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예린이도 엄마의 전철을 밟아 말로 자녀를 학대하고, 죽이고, 무너뜨리는 엄마가 되었을까?

내 대답은 슬프게도 '그렇다' 아니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둘 중 하나를 고르겠다.

 

사춘기에는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에 격량이 이는 감수성이 풍부한 가장 예민한 시기다.

사춘기에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고 독선적인 엄마 대신 차라리 무관심한 아빠를 선택해 새엄마와 동갑내기 자매와 사는 예린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을 엄마로 둔 예린이의 어린 마음이 애처롭다.

세상에 기댈 사람 아무도 없고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빈가슴 부여잡고 방황하는 예린이가 가엾다.

정신이 온전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오죽했으면 주문을 외우며 간절히 소원을 빌었을까.

단 한 사람이라도 예린이의 빈가슴을 채워 주고 예린이의 말에 귀기울여 주었더라면,

그렇게 겉돌며 방황하지 않았을테고 그랬으면 꽃다운 나이에 패싸움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을 텐데...

예린이의 짧은 인생보다 나를 더 슬플게 만드는 것은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혼자였다는 게 슬프다.

짦은 생을 살다간 예린이는 그보다 훨씬 짧은 행복을 맛보았고, 자기 생보다 더 긴 외로움과 절망을 경험했다.

가족이 있었는데도, 부모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가족이란, 가정의 기능이란, 부모란,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엄마 아빠의 싸움을 보는 것은 예린이에게 일상이다.

끊임없이 싸우며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와 엄마의 기에 눌려 무심하고 무표정한 아빠의 이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과연 몇 이나 될까마는 그렇다고 모두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 때문에'하며 그렇게 그대로 산다.

하지만 그대로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더구나 자식을 핑계로 부부의 끈을 놓을 수 없다면, 최소한 자식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예린이의 엄마처럼 너무 늦게 고백하지 말아야 한다.

딸이 죽어가는 순간에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어디 있나.

 

 

나는 사춘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두 아이를 둔 엄마다.

이 책은 두 아이와 남편, 그리고 엄마의 역할을 돌아보게 했다.

엄마의 역할이 순기능가정을 만드는 데 가장 크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렇다할 반항이나 방황 없이 무난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두 아이가 더없이 고맙다.

두 아이가 호된 몸살을 앓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사춘기를 넘겨주었으면 더 고맙겠다.

부모의 역할과 가정의 소중함을 사춘기 소녀를 통해 그린 주문 외우는 파랑새와의 만남에도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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